숙아, 요가가 에고(Ego)를 비벼줘

쉽게 이해하는 요가철학

by Lazy Yoga Club



대슈퍼스타 갓효리언니 덕분에 요가가 보편화된 이후, 살면서 요가를 한 번이라도 접해본 분들이 꽤나 많아졌다는 걸 실감한다.

딱히 요가가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세상이 사람들을 점점 피곤하게 만들고 있고, 그러다 보니 휴식과 힐링이 필요해져서 찾게 되는 듯싶다.

헬스와 필라테스처럼 몸만 다루는 게 아니라 마음건강까지 보듬어주는 운동이니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요가의 대중화에 비해 스포츠가 아닌 ‘수련으로서의 요가’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요가원에서 움직이는 동작들이

내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시는 분들이 훨씬 많다. 지도자과정을 거쳐가신 선생님들이라면 모두 아는 내용이지만

몸을 움직이는 시간에 요가철학적 내용들을 끼워넣기가 어렵다 보니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요가 철학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여러 가지 철학적 내용 중에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아비디아’ 즉 무지의 상태를 쉽게 설명해보려고 한다.

이것을 알면 왜 요가가 수련으로 불리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 글이 요가를 더 깊게 마주하고픈 분들께 도움이 되길.





요가는 ‘나’라는 존재를 몸/ 마음/ 영혼으로 나눈다.

보통 우리는 몸과 마음을 ‘나’라고들 착각하면서 산다. 어떤 사람은 몸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과도한 성형과 소비를 하며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만 집착한다.

또 다른 사람은 마음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감정이 진짜 나 인 줄로 착각하며 우울증, 조울증, 정신병에 쉽게 빠진다.

어떤 착각이 숨어있을까? 여기서 한 번 내 몸, 내 마음을 입으로 발음해 보자.


내 몸.

나의 몸.

내 마음.

나의 마음.


이 짧은 문장 안에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바로 ‘내’가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유격의 문장으로 보아 몸과 마음은 내가 될 수 없다는 것까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진짜 나.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참나를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요가와 불교가 참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요가는 참나가 몸과 마음의 주인이다. 참나가 사장님이라면 몸과 마음은 밑에 있는 사원이다.

​반대로 불교에서는 참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아 = 나 없음/ 무아지경 =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고 정신이 한곳에 집중된 상태) 참나가 없어 볼 수 없는 대신,

변화하는 몸과 마음을 바라보며 이것이 허상이고 가짜임을 깨닫게 끔 안내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참나는 몸과 마음이 아닌 ‘나’를 뜻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요가 철학에서는 누구나 ‘아비디아’라는 무지의 나무를 기르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지는 멍청하다는 뜻이 아니라 위에서 설명했던 대로

몸과 마음이 ‘진짜 나‘라고 믿는 무지를 뜻한다.

위의 그림처럼 사원급 밖에 안 되는 몸과 마음이 주제넘게 회장인 척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보스의 명령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상태를 무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비디아는 나무 기둥에 쓰여있듯이

가지로 뻗어나간 네 개의 가지들 (라가,드베샤,아삐니웨샤,아스미타)을 포함해 가지의 근본이 되는 뿌리 전체를 말한다.

​이름이 쉽게 보기에는 쫌 거시기해서 한국말로 의미를 함께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라가 = 애착

드베샤 = 증오와 거부

아스미타 = 에고(Ego)

압히니베샤 (아ㅃ히니웨샤 로 발음) = 공포​

아비디아 = 무지


이제 이것들을 요가자세(아사나)에 적용해 보자.



라가 = 애착

내 몸에 맞는 아사나가 아닌데도 하고 싶은 자세만 하는 경우. 혹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과한 애착을 가지는 마음 ( 내 물건, 내 아이, 내 고양이)

드베샤 = 증오와 거부

내가 못하는 요가자세는 증오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혹은 싫어해서 그 대상을 더욱 뚜렷이 보게 되는 마음

아스미타 = 에고(Ego)

잘되든 안되든 요가를 하는 멋진 나에 빠진 상태.

내가 더 잘났고 내 말이 다 맞다. 의 마음 상태

압히니베샤 = 공포

역자세를 할 때 뒤로 넘어져서 죽을까 봐 무서움을 느끼는 경우. 혹은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상황을 회피하는 마음.

아비디아 = 무지

내 몸을 진짜 나라고 착각하여 보이는 이미지나 외모에 과하게 집착하는 경우.

혹은 내 마음을 진짜 나라고 착각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에 동요되는 경우.

​제대로 된 요가 수련은 위에서 언급했던 아비디아의

가지들을 모두 한 번씩 건드린다.

어떤 한 가지 자세만을 고집스럽게 하거나 반대로 어떤 한 가지만 고집스럽게 안 하는 수련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요가 수련은 아비디아를 점점 없애주고 희미하게 만들어준다. 요가를 꾸준히 수련하기만 해도 나의 자아가 비벼지고, 저 아래서부터 휘저어지고, 외부의 세상과 내가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못하는 자세들을 계속 시도하면서 '라가'와 '드베샤'를 없애고, 역자세를 시도하면서 '압히니베샤'를 없애고, 다른 사람과 마주하면서 '아스미타'를 없애고, 호흡을 하며 마음보다 참나의 소리를 듣는 훈련을 한다. ​이 지점이 요가가 운동 그 이상으로 불리우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래서 가끔 혼자 수련하시는 분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아비디아가 커진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아마 하고 싶은 것들만 수련하게 돼서 더 빠르게 무지가 커지지 않았을까.

누가 더 많이 뒤로 접는지.

누가 더 많이 호흡을 잘하는지.

누가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지.

누가 더 많은 제자가 있고

누가 더 많은 자세를 할 줄 아는지...

요가 철학을 알면, 누가 진짜 요가를 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자세를 뽐내는 게 요가가 아니다. 호흡을 잘하는 것만이 요가가 아니다. 한 자세에 빠져들어 그것만 밥먹듯이 하는 것도 요가가 아니다.

그 모습들은 모두 나의 에고가 만들어 낸 무지의 나뭇가지들에 불과하다.

진정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요가수련임에도 더 이상 참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나의 수련을 한 번 점검해 보자.

나는 어떤 무지를 키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