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이미 타락했다.

명상에 대한 오해 풀기

by Lazy Yoga Club


명상이란 단어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이미 타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하다, 고민하다, 숙고하다’라는 명상의 일반적인 의미는 상당히 사소하면서도 평범하다. 진정한 의미의 명상을 이해하려면 단어 자체를 잊어버려야 한다. 잴 수 없는 어떤 것을 단어 하나로 재거나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명상이란 단어를-사실 이 단어만큼 훼손되거나 변질되어 평범해지지 않은, 더 나아가 돈을 버는 수단으로 타락해버리지 않은 단어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쳐놔야만 시간과 무관한 움직임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느낄 수 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 (34-35p)



친한 선생님이랑 대화를 하다가 정말 충격적인 소식 하나를 들었다.

인스타그램에 광고가 자주 뜨는, 이미 너무나 유명해서 요가 강사라면 모를 수 없는 요가원에서 ‘명상 지도자과정’을 엉망진창으로 가르친다는 뉴스. 차라리 서점에서 파는 명상 책 한-두권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수준이라는 얘기와 함께.

전쟁으로 인해 안 그래도 퍽퍽해진 살림살이에 물가까지 오르고 있는 시장. 인건비가 오르면서 한 사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드는, 과한 업무를 조장하는 회사생활이 지속될수록 최근 사람들에게 있어 마음 챙김과 웰니스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만큼 ‘명상’과 ‘힐링’을 키워드로 요가 강사를 포함한 웰니스 종사자들이 앞다투어 장사를 하기에 좋아졌다는 뜻. 확실히 1-2년 전 요가시장을 비교했을 때 ‘명상지도자과정’ 민간 자격증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제 막 명상을 배우려는 선생님들을 상대로, 명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돈을 뜯어가고 있다. 그것에 대한 나비효과는 명상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까지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는 것으로 이어질게 분명해 보인다. 글의 제목이 약간 거칠어진 것도 그런 이유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처럼, 명상은 정말로 돈을 버는 수단으로 타락해 버린 지 오래되었으니.


딸깍- 한 번에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명상이 좋은 영향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명상을 어떻게 해야만

나에게 ’ 좋은 영향력‘으로 이어지는지는

몸으로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실천하고 경험하지 않는다면

지식과 이론은 허상에 불과하다.






1. 명상은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있기 대회가 아니다.

으레 ’ 명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누구나 가만히 앉아 눈을 감는 형상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고착화된 명상은 ‘불교 명상법’에 국한되어 있다. ‘요가명상’으로 조금만 방향을 틀면 ‘명상’을 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생겨난다.


눈을 감았을 때 생각이 많아진다면 눈을 뜨고 한 점에 집중해도 된다. 가만히 앉는 걸로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산책을 하거나 촛불을 바라보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집중해서 들어도 된다. 앉아있을 때 허리나 다리가 아프다면 명상 전에 스트레칭(아사나)을 하는 것도 ‘요가명상’이다. 혹은 아예 누워도 된다. 숨을 미간으로, 가슴으로, 복부로, 회음으로 쉬는 것 또한 요가 명상법이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에너지를 위로 올리는 것도 요가 명상법이다.


오래 앉아있는 법을 배울 거면 절에 들어가서 스님들 곁에 앉아있지, 300만 원 상당의 돈을 주고 배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장 동네에 있는 독서실에 들어가 고시생이나 공부를 잘하는 고삼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 오래 앉아있는 것 = 명상을 오래 했다 ]

이 문장이 성립되려면 그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있어야 한다.


30분 앉아있었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단 한순간도 ‘지금’에 머물지 못했다면, 그건 명상을 했다고 할 수 없다. 단 1분 동안 머리가 개운해지고 잡생각이 사라졌다면, 명상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명상은 시간을 내어 조용한 곳에 처박혀 앉아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거지를 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심지어 도시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고 다닐 때도 현재에 집중하며 생각을 고요하게 한다면 ‘명상 상태’라고 부를 수 있다.


2. 명상을 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정상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명상을 하면 잡념이 사라지고, 고요한 상태가 유지되는 자신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명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움직일 때보다 더욱 머릿속은 시끄러워진다. 그동안 몸을 계속해서 움직였기 때문에 그 관성에 맞춰 몸이 멈추면 마음이 더욱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명상을 시작하는 뇌는 과거의 생각이 정화되기 위해 흑역사를 무의식 속에서 꺼내오거나, 하나의 생각이 왜 나왔는지 그 원인을 찾아 올라가거나, 근질근질한 몸을 구석구석 살피면서 가만히 있는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한 날뛰는 마음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에 앉혀 두는 것.

그것이 명상이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말을 훈련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끝없이 훈련시키는 것 밖엔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명상을 꾸준히 해보자.

하면 할수록 아주 서서히 생각의

양과 질이 변화할 것이다.


*​다만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고, 머리가 뜨끈할 정도로 생각의 양이 많아지고, 끊기지 않고, 대부분 부정적으로 흐른다면 명상을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점검해야 할 때다. 혼자 하기보단 유튜브던 요가원이던 안내자와 함께 명상하시길. 특히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밖에 나가 공원 두 바퀴를 도는 게 명상보다 낫다.



3. 마음이 하는 일

파도가 치는 게 바다의 일이라면, 마음이 하는 일은 영혼과 몸 사이에서 나의 생각과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가끔 명상 안내를 하시는 분들이 (특히 스님) 자꾸만 “마음을 없애라”는 단어를 쓰신다.

마음을 없애면 그건 소시오패스잖아…


명상은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다루는 연습을 한다.

마음은 한 번에 단 한 가지 일 밖에 하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우울하고 슬퍼도 귀여운 고양이 영상을 보면 아주 잠깐이나마 웃음이 나는 것. 카페에 앉아 친구와 깊은 대화를 할 때, 들려오는 노랫소리의 가사를 파악할 수 없는 것 역시 그 증거가 된다. 마음은 언제든지 내 몸의 감각과 의식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물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명상을 하겠다 마음먹는다면,

조용한 방에 틀여 박히지 않아도

명상을 할 수 있다.


절이나 숲에 가지 않아도,

가부좌를 틀지 않아도 된다.


설거지를 하는 순간에도

출퇴근을 하는 순간에도

지금, 몸과 마음이 함께 있다면

그것은 명상이다.




명상을 지도자급으로 배운다면야 당연히 많은 수련과 기법과 호흡기술이 필요하겠지만, 그저 힐링을 위한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깊은숨 한 번에 0.1초라도 생각이 사라진다면 오늘의 명상을 다 한 것이다. 이 글로 인해 오해가 조금이나마 풀렸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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