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나와 바유로 보는 요가생리학
사람들은 힐링을 원할 때, 편안한 쉼을 원할 때 도시를 떠나 자연을 찾는다. 나무로 둘러싸인 숲,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 그늘 아래 얕은 물이 흐르는 곳, 혹은 작은 숲 속에서 저녁에 피워 올리는 캠프파이어의 불꽃까지. 이 장소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리 몸이 지니고 있는 자연적 요소들과 닮아있다는 점이다.
우리 몸에 어떠한 결핍이 생길 때, 나도 모르게 자연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할 때가 있다. 마치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듯 아주 오래된 본능처럼.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숲에서 살며 시한부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물, 불, 흙, 바람, 공간. 우리의 몸 또한 자연과 다를 바 없는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닮은 몸에는 자연과 같은 에너지가 흐른다. 요가에서는 자연이 주는 생명 에너지를 ‘프라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프라나는 두 가지 뜻으로 나뉜다. 하나는 몸에서 기능하는 5가지의 미세한 바람인 ‘바유’의 전체를 의미하고 (사진 프라나 1)
또 하나는 몸에서 기능하는 주요 바유 중 하나인 ‘프라나 바유’를 뜻한다 (사진 프라나 2)
바유는 공기, 바람이라는 뜻으로 가스가 움직이는 방향을 의미한다. 몸 바깥에 있을 때는 바유라고 하지만, 몸 안으로 들어와 생명활동을 할 땐 프라나라고 부른다. 사람에게는 생명활동을 도와주는 10가지 바유가 있는데 그중에 주요 바유 (Major) 5가지와 부차적인 바유 (Minor)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래로는 10가지 바유가 어떤 생리적 작용과 연관되어 있는지 풀어써보았다.
움직이는 방향
우다나 : (내쉬는 숨) 아래 -> 위
프라나 : (마시는 숨) 위 -> 아래
사마나 : 배 쪽에서 소용돌이
아파나 : (하복부) 위 -> 아래 (다리)
비야나 : 배꼽에서 손 끝, 다리 끝 몸 전체
프라나는 다섯 가지의 공기 흐름, ‘바유’로 나눌 수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프라나, 사마나, 아파나.
이 세 가지 흐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태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요가의 중요한 수행법 중 하나인 ‘반다(Bandha)’가 등장한다.
반다는 ‘묶다’, ‘잠그다’라는 뜻을 지닌다. 요가 수행자들은 몸 안의 에너지가 바깥쪽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특정 지점을 잠그고 모으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목, 배꼽, 그리고 회음부. 이 세 지점을 통해 몸 안에 흐르는 에너지를 묶어 머물게 하고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프라나 바유가 약해지면, 우리는 단순히 음식뿐 아니라 감각과 경험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울할 때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몸의 반응이 느리게 느껴진다면 프라나바유가 약해진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때 목구멍을 잠구는 잘란다라 반다를 수련하면 위로 흩어지는 에너지를 붙잡아 둘 수 있다.
반대로 아파나 바유가 약해지면, 아래로 배출되어야 할 것들이 정체된다. 변비나 가스가 자주 생겨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다리와 하체의 힘이 약해져서 쉽게 피로해진다. 이 흐름은 물라 반다를 통해 아래로 새어나가는 에너지를 단단히 잡아줄 수 있다.
이 두 흐름이 균형을 이루며 하나로 모일 때, 몸의 중심에서 사마나 바유가 활성화된다.
사마나는 에너지를 통합하고 변형시키는 힘이며, 외부에서 들여온 것들을 쓸 수 있는 에너지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요가에서는 꾼달리니를 깨우는 핵심적인 자리로 여겨진다. 결국 반다는 단순히 조이는 행위가 아니라, 흩어진 바유, 즉 에너지를 모아 중심으로 되돌리는 섬세한 기술인 셈이다.
마이너 바유인 5개는 내 몸에 항상 존재하며, 주요 바유와는 다르게 특정 상황에서만 발생한다. 딸꾹질, 재채기, 하품, 눈 깜빡임 등이 모두 부차적인 바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특히 다난자야는
숨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바유를 뜻하는데, 요가 안에서 ‘죽음’을 정의 내릴 때는 바유의 움직임이 단 한 개도 없을 때를 의미한다고 한다.
나의 몸은 자연과 다를 바 없다. 구름의 모양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날씨가 매일매일 변화하는 것처럼 내 몸의 에너지 역시 매일이 다르다. 내부의 에너지가 약한 날엔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감각을 느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라나의 움직임으로 오늘의 나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을 회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되찾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위적인 개입을 멈추고, 본래의 흐름에 맡길 때
비로소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 방식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더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멈추는 것.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고, 고치고, 바꾸려 하지만 사실 몸과 마음은 이미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과도한 자극, 지나친 생각, 억지로 붙잡고 있는 감정들…이런 것들이 줄어들 때, 호흡은 다시 깊어지고 몸은 스스로 균형을 찾으며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
치유의 에너지는 바유라는 이름을 지니고 자연에 널리 퍼져있다. 자극을 멀리하고, 붙잡았던 생각을 내려놓고, 자연의 품으로 기어가 편안하게 그 속에서 숨 쉴 때. ‘잘하려고 애쓰지 않을 때’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