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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호숲 Dec 22. 2020

태리야 제발 놀아줘!

태리야 제발 놀아줘

호기심이 고양이를 움직인다


이사까지 하고 산책도 하고 수제 장난감도 만들어주는데 태리가 잘 놀겠지? 놉. 오늘도 태리는 엄청 도도하다. 태리야... 제발 놀아줘... 제발!!




사실 사냥놀이는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무슨 얘기냐면, 태리가 꼬꼬마일 때 놀이법이 썩 좋지 못했다. 그게 화근이 돼 아직까지 "태리야 제발 놀아줘"를 외치고 있다고 나는 추측한다.


태리는 우리 집에 와서 중성화 수술을 받을 때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에 무조건 달려들었다. 그런 태리가 귀여워 남집사나 나나 장난감을   없이 정신 사나울 정도로 빠르게 흔들었다. 아주 세차게 태리 눈앞에서. 태리가 중성화 수술을 받고 나서도 한동안 나는 사냥놀이에 대해 무지해 계속 같은 방법으로 놀아줬는데 태리 반응이 180 변했다. 그제야 사냥놀이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커뮤니티, 책으로 공부하며 가장 많이 접한 조언은 장난감에 빙의하는 방법이었다. 쥐 모형 장난감이면 쥐의 움직임을 모방하고, 새 모형이면 새가 날았다 착지하는 모습을 떠올려 연기하라는 뜻인 것 같다.


문제가 있다. 나는 대부분의 동물이 무섭다. 살면서 본 동물 다큐멘터리는 손꼽을 정도로 적어 새의 날갯짓 같은 동물의 움직임에 대한 지식도 없거니와, 미취학 아동일 때를 제외하고 평생 도시에서 살면서 그 흔한 바퀴벌레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왜 고양이 장난감이란 다 쥐, 새, 뱀, 곤충인 것인가! 날파리 잡을 때도 무서워 오두방정을 떠는 내게는 모두 공포 그 자체다.


빙의는 못 하겠고, 대신 호기심을 자극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했다. 장난감을 어떻게 흔들든 태리가 움직이면 되니까. 장난감도 이것저것 시도해서 태리의 취향을 알아냈으니 놀이 방법도 하나씩 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반응을 살피다 보니 자연스레 내 눈은 태리에게 고정됐다. 장난감을 움직일 때도 시선은 태리를 향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장난감을 지물에 부딪쳐 소리를 내거나 숨기기도 하고 움직임 패턴을 바꿀 수도 있다.


시선이 고정되면 반은 성공. 동공이 확장되면 성공 확실 3초 전. 여기서 승부수를 건다. 더 빨리 움직일 것인가, 공중으로 띄울 것인가, 텐트 속에 숨길 것인가, 카펫 밑으로 샤샤샥 넣을 것인가, 부르르 떨지, 아예 멈춰버릴지 등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태리가 엉덩이를 실룩거리거나 발사하면 성공. 실패하면 시선 끄는 것부터 다시. 그런 식으로 매번 놀이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무조건 태리를 뛰게 하는 데 혈안이었다. 어느 정도 스킬을 터득하니 쉬웠다. 그래서 매일 그렇게 놀아줬는데 어느 날 태리가 파업했다. 무조건 먹히는 스킬을 보자마자 노이로제가 걸린 듯 벌러덩 누웠다. PT를 받던 때라 그 벌러덩만 보고도 기분을 감지했다. 놀이가 아니라 운동으로 느껴지면 너도 고달프겠구나. 그래서 이제는 뛰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오랫동안 태리가 즐겁게 놀아서 더욱 건강해지도록 최대한 재미와 호기심을 부추기는 게 나의 놀이 목표다.




베이킹 태리


몇 년 전부터 이따금씩 베이킹을 한다. 주로 선물용으로 케이크나 쿠키를 굽는다. 재료를 반죽해서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레시피를 보고 휘리릭 뿅! 하고 빵이 구워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븐 예열부터 굽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린다. 게다가 손에 익지 않아 종종 실패한다. 최근에도 비건 초코칩 쿠키를 만드는데 실수로 구운 설탕을 연성했다.


태리는 가끔 오븐 같다. 예열도 오래 걸리고 입맛에 맞는 놀이를 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때가 있다. 그래서 태리랑 놀아주려고 했던 사람은 하나같이 금방 포기했다. 태리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편까지 장난감을 휘두르다 지쳐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 일쑤였다.


태리는 절대로  놀아.”

태리랑 놀아줄  있는 사람은 이리밖에 없어.”


포기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회사 생활할 때 자주 못 놀아줬고, 미봉책으로 새 장난감을 샀으니까. 퇴사하고 태리를 알아가면서 깨달은 건 천천히 흥을 돋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냥감이 너무 멀리 날아가거나 빠르게 움직이면 순간적으로 태리가 눈을 번뜩일지 모르나 달려들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처음에는 살살 약 올리면서 썸타듯 놀아준다. 태리한테 최대한 가깝게 잡힐 듯 말 듯 느리게 장난감을 움직인다. 놀이 초반에는 적당히 잡혀주는 게 좋다.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이렇게 놀다가 예열이 다 되면 태리는 빵이 부풀어 오르듯 춤추며 뛰어다닌다. 그때부터는 장난감을 화려하게 움직여도 포기하지 않고 잘 논다.


태리가 아무리 귀여워도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은 노력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안 준다. 다행히 퇴사하고 몸과 마음의 여유를 얻어 천천히 태리를 알아가면서 사냥놀이가 점점 즐거워졌다. 신난 태리 모습에 중독됐다. 여전히 몇 번씩 장난감을 바꾸거나 놀다가 갑자기 산책을 할 때도 있지만 이제 포기하지 않는다. 태리 마음이 예열 중이길 바라면서 기다리면 언젠가 놀아줄 테니까.


태리가 노는 모습보다 짜릿한 건 없으니까.


올웨이즈 노 포기 = 예스 짜릿.


태리야 난 널 절대 포기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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