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OR THINGS 가여운 것들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본성과 교육의 관점에서)

by 두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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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R THINGS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가여운 것들>은 전면적인 우화이며 온전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이야기 속의 의미들은 초현실적인 색감과 풍경들 속에서 충만하게 흘러넘친다. 정신적 육체적 양면에서 유소년기를 건너뛴 (혹은 매우 짧게 지나가는) 주인공 벨라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 생득한 근원적 정신과 사회와 문화속에 빚어지는 정신, 그 사이에서 오가는 질문들.

보면서 폴 토마스 앤더슨 갑독의 <마스터>가 떠오른다. 태생적으로 비정상(?)인 주인공.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인물들을 만나고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후에 자기 삶의 <마스터> 혹은 니체가 말하는 우버멘쉬같은 (혹은 근접하는) 존재가 된다.


인간이 형성되는데 가장 뿌리가 되는 유소년 시절을 건너뛰면 어떻게 될까?

주인공 벨라는 인간을 틀에 맞추는 교육을 건너뛰고 곧바로 자신만의 경험으로 세상을 겪어간다. 정신은 유아인데 몸은 이미 성인이라서 억제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본능이 여과없이 분출된다. 채 다듬어지기도 전에 던컨과 만나 훌쩍 세상으로 나가버리면서 모험이 시작되고 그녀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과 인간들을 마주본다.

그녀가 얻는 경험속에서 인간은 모순적이고 다중적이다. 인간이 만든 사회는 추악하면서 동시에 아름답다. 그 사실을 벨라 이외의 인간들은 부정하거나 괴로워한다. 어떤 편견도 없이 이 세계를 겪은 벨라는 부정과 고뇌 대신 모순과 다중성 그대로를 받아들임으로서 오히려 온전한 인간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뜰에 모인 모든 존재(?)들 역시 어떤식으로든 그 모순을 받아들이고 (염소가 되어버린 전남편까지도) 그래서 행복하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교육은 필수이다. 그건 인류가 부족 생활을 시작하고 마을를 만들때부터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 교육은 생존을 위한 노하우와 함께 살기 위해 지켜야할 규칙들이 기본이었다. 그렇게 인간은 번성해왔고 사회는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졌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교육해야 할 것도 많아졌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교육도 양면적이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을 가르침과 동시에 사회에 축적되어온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들 또한 스며든다.

영화 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Polite society 라는 말은 상류사회라고 번역되는데 그로인해 원래 감독이 의도한 함의에서 많은 부분이 탈락되게 만든다. (잘못했다기보다 번역상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예의, 예절 혹은 교양 같은걸 다 포함한 말로서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고 타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극중에서 강조되는 말이다. 극의 후반부에 이르면 벨라 역시 그 '예의'가 어떤 것인지를 충분히 알고 적당히 맞춰주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중반까지는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생각할법한 말과 행동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교육되어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그 규범들에는 욕망, 야성, 연민 같은 인간 본성의 것들이 가두어져 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고정관념도 영화속 주요한 이야기로 자리잡는다.)

유전자를 통해 이어받는 본능과 야성 그리고 교육에 의해서 전해지는 문화 혹은 문명. 그 두가지가 더해져 인간이 된다. 어느쪽이 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세상일이 대개 그러하듯 적절한 균형이 제일 중요하다는 다소 허무한 말이 최선의 답이지 않을까? 홉스는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보았고 반면 루소는 우리가 본래 선하게 태어났으나 오히려 사회가 타락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은 그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영화속 벨라는 다행히 루소의 생각에 더 부합하는 인간이다. 처음 유아기 상태에서는 폭력적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장난으로 개구리를 죽이고 고드윈의 수술실에 있는 시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찔러댄다. 그런 그녀가 던컨과 여행을 떠나 조금씩 세상과 부딪히고 알렉산드라에 도착해 처음으로 비참한 인간 사회의 어둠을 보게 된다. 그때 그녀의 반응은 깊은 슬픔이었다. 누가 그래야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녀의 본성에 깃들어있는 연민 그 자체의 발현. 그 후에 파리에서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세상의 부조리함을 온 몸으로 부딪혀 배워나간다. 매음굴의 마담은 벨라가 어둠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아름답기만 한 경험으로는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마담은 벨라에게 치욕, 공포, 슬픔까지도 우리가 겪어야 할 경험이라 말한다. 그래야 더 온전하고 단단한 진짜 어른이 되는거라고.


물론 많은 경험이 곧 '이상적 인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경험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각 개인의 기질과 운에 많은 부분 영향 받는다. 영화 속 벨라는 그의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GODWIN 혹은 GOD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것들을 지닌 채 경험을 한 덕에 인간으로서의 훌륭한 여정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과학자로서 사물과 현상을 냉정하게 보는 시선과 그 냉정함 속에서도 스며나온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밸라를 집 밖으로 못나가게 하고 자신의 제자와 결혼시키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뜻에 따라 세상으로 내보낸다.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그녀를 존중해주었고 가끔씩 날아오는 편지를 통해 그녀의 성장을 보며 기뻐한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한 교육은 교육이 요구하는 면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점수를 위한 학교와 학원 수업을 강요하는 것보다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위험해 보일지라도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세상과 마주칠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 그게 그나마 좋은 교육이 아닐까?

타인이나 권위가 정해준 답은 정답이 아니라 가이드일 뿐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벨라처럼 삶의 여정을 통해 부딪히고 배우며 느낀 것들을 통해 사유하고 깨달아야만 한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우리가 아무 사유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반박 혹은 반성이다.

제목이 POOR THING이 아니라 POOR THINGS의 복수형이라는 점이 모든것을 설명한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가여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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