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도로에서 떠올렸던 어떤 생각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자주 들린다. 시대가 힘들어진 탓일테다.
하지만 그 말은 애시당초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 진정한 목표라기보다 수사적이라는 표현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조 섞인 한탄으로라도 해서는 안될 말이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현대 문명의 우리에게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인 데다 지금의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것을 부정하게 만든다. 각자도생이 성립하는 건 영화 ‘매드맥스’에서 보는 그런 세계뿐이다. (그마저도 온전한 각자도생은 아니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도 인간이 각자도생을 했던 건 석기시대나 그 이전뿐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가족단위의 각자도생 정도는 떠올릴 수 있다.
지금의 우리는 모든 걸 사회시스템 혹은 문명의 혜택 위에서 누리고 있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각자도생이라는 건 사실 그 기반을 전제로 둔 채 살아가면서 무의식적으로 그 시스템을 배제하는 말일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네팔의 도로를 떠올린다.
카트만두와 포카라를 잇는 길. 고도는 높고 산을 깎아서 만든 좁은 2차선 도로. 수도와 제2의 도시를 잇는 유일한 길이고 매일 많은 차와 트럭들이 오간다. 하지만 대부분 비포장이고 산을 깎아 만든 길이라 비가 오면 군데군데 무너져 내린다. (코로나 기간 동안 꽤 많이 포장 작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반 이상은 여전히 비포장이고 군데군데 작업 중이긴 한데 그게 오히려 교통을 더 방해하고 있다.)
거리로는 200Km 정도이지만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날그날의 사정에 따라 더 걸릴 수도 있다. 우기에는 더 오래 걸리고 아예 길이 끊기기도 한다. 중간중간 좁은 길에 양쪽 차선의 차들이 엉켜서 힘들게 빼내야 하고 낡은 차들은 시속 30-40Km 정도로밖에 달리지 못한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조금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이런 도로에서 포르셰를 타고 달리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 말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고급차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조금 더 소박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개인이 힘든 건 단순히 그 자신의 능력이나 성실함 탓이 아니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도로에선 어떤 차도 제대로 달릴 수 없다. 내가 좋은 차로 편하고 빠르게 달리고 싶다면 우선 해야 할 일은 차를 사기 전에 그 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의 우리는 (대한민국은) 새로 도로를 깔아야 할 만큼 열악하진 않다. 하지만 곳곳에서 그 도로에 균열이 생기고 구멍이 생기고 있다. 거기다가 함께 도로를 사용하기 위해 정한 약속들이 쉽게 깨지고 있다. 그 상황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며 오히려 해를 끼친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도로를 따로 만들고 유지하려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유지되지 않는 도로에서 비틀거리며 달려간다. 그건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갈등을 일으키고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더 적은 성과만 얻을 수 있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떠올려보자. 1차선은 속도 무제한이다. 충분히 차의 성능이 좋고 운전에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달려도 좋다. 내가 1차선으로 달리다가 더 빠른 차가 오면 비켜준다. 천천히 갈 사람은 그에 맞는 차선에서 달리면 된다. 그걸 위해서 도로는 늘 매끄럽게 유지되어야 하고 각자의 속도가 존중되어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삶에서 이루는 성공의 80%는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로 이미 결정 난다고 한다. 거기에 어떤 부모를 만나는가, 어떤 지역과 동네에서 사는가, 어떤 친구를 사귀게 되는가 등등의 요소들이 조금씩 붙어 나간다. 한마디로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것이 운에 의지한다는 말이다.
네팔과 비슷한 다른 예를 들어보자. 탄자니아의 유명한 관광지 잔지바르에서 반나절 가이드를 해주었던 도밍고라는 친구의 이야기다. 숙소 주인의 소개로 만나 같이 거북이섬을 구경하고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그는 매우 유창하게 영어를 하고 불어와 스와힐리어 그리고 자기 부족의 말까지 할 수 있는 Polyglot (다중 언어 구사자) 이었다.
친절했고 성실해서 원래 약속한 금액에 팁까지 더해서 주었지만 뱃삯과 소개비를 빼면 그의 반나절 일당은 2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잔지바르 스톤 타운을 걷다가 다시 그와 마주쳤다.
길에 서서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영어와 불어로, 거기에 새로 배우고 있는 독일어까지 사람에 따라 바꾸어가면서. 소개를 통해 예약을 받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손님을 데리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거리에는 그와 같은 가이드들이 몇십 미터 간격으로 서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우리나라에서 그만큼의 언어 능력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같은 노력을 하고 같은 능력을 가진다고 이루는 성취가 같을 수 없다. 그 밑바탕엔 모두가 기여하고 노력해서 이루어낸 시스템, 안정, 기회 같은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균열을 손보고 구멍을 메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먼저 좋은 차로 달려 나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당장의 행동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괜히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런 두려움에 지면 안된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으며 함께 이룬 문명 위에서 자유를 누리고 또 경쟁도 하고 있다. 다 무너진 도로를 혼자서 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허물어진 도로 위에서 혼자 고급차를 달리는 건 그 차의 성능도 제대로 내지 못할뿐더러 빨리 달릴수록 오히려 차에 손상이 가해질 뿐이다.
때로는 나 혼자만 도로를 걱정하는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도로를 살피는 동안 다 자기차를 타고 내 옆을 지나 달려 나가 버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그 길을 수선하고 유지해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도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걸 잊으면 안 된다. 다 함께 할 때 훨씬 편하다. 이건 단순히 이타심이나 공명심의 문제가 아니다. 효율성의 문제다. 내가 포르셰를 타고 싶으면 차를 사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사실 대단한 건 없다.
이미 이 시스템은 우리가 모두 참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자기가 내야 할 세금을 잘 내고 (내가 번돈을 뺏기는 기분이 들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포르셰를 사기 위해 노력할 시간에서 조금만 여유를 내어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어떨까? 우리가 모두 도로 곳곳을 살필 수 없으니 그걸 대신해 줄 사람을 잘 찾아서 뽑고 꾸준히 지켜보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짧게 말하자면 정치인이나 정부)
어쩌면 때에 따라선 내가 포르셰를 살 돈이 있다 해도 도로를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그보다 조금 아래 등급의 차를 사야 할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비포장 도로에서 조심스레 걱정하며 달리는 포르셰 보단 깨끗하게 포장된 길에서 시원하게 달리는 BMW가 더 낫지 않을까?
혹은 누군가 무리하게 달려가 도로를 훼손하거나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경고하거나 설득해야 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최소한 그에 휩쓸려 따라가진 말아야 한다.
그보다 더 작게는 식당이나 편의점, 그도 아니면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기회가 된다면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다 같이 도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여전히 이 말들이 나이브하게 느껴지거나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당장 내 주변의 상황이 너무 힘들거나 반대로 눈앞의 목표에 심취해서 다른 게 안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기억하자. 이건 효율성의 문제다.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욕망을 추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각자도생. 그런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