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 다 자란 사람.
사람들은 흔히 어른이 된다는 것을 곧 현명해진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쓴다. “나이 들면 다 알게 돼.” “세월이 약이야.” 이런 말은 우리가 자라며 들어온 신화와도 같다. 그러나 실제 삶을 보면,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현명해지지는 않는다.
세월이 주는 건 경험의 총량일 뿐이다. 물론 그 경험은 결코 가볍게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경험이 곧 지혜로 번역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경험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남는다. 어떤 이는 좌절에서 신중함을 배우지만, 또 어떤 이는 실패에서 유연함을, 다른 이는 상처에서 고집을 배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다기보다는, 각자의 방식으로 더 복잡해지고 때로는 뒤틀린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를 먹는다고 반드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현명해지려면 스스로 배워야 한다.” 어른다움이란 단순히 지식의 양이나 판단의 정확성이 아니라,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꾸려갈 힘이다. 인생은 늘 정답 없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그 앞에서 자기만의 해법을 찾아가며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힘, 그것이야말로 어른이 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단순한 진실을 망각한 채, 어른이 된다는 거짓말을 반복한다.
요즘 어른들이 젊은 세대를 향해 가장 흔히 하는 말은 “철이 없다”는 것이다. 욜로(You Only Live Once)가 유행했을 때, 사회는 젊은 세대를 향해 혹독한 비난을 퍼부었다. “한탕주의다, 현실감각이 없다, 저래서 나라가 망한다.” 그러나 이 담론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었다.
욜로는 애초에 지금의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다소 철학적이고, 동시에 시대에 대한 작은 반항의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소비주의와 결합되며, 아무 생각 없는 하루살이식 태도를 대변하는 말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그 변질의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다. 광고판을 뒤덮은 자극적인 카피, 방송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 소비 권유, SNS에서 반복 재생된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은 산업을 지배하고 소비 문화를 기획한 기성세대의 산물이었다.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기업 마케팅 책임자, 방송국 프로듀서, 패션지 편집장은 모두 청년이 아니었다. 결국 젊은 세대를 철없다고 욕하면서도, 그 철없음을 설계하고 부추긴 것은 산업을 쥔 어른들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요노(You Only Need One)’라는 말이 등장했다. 필요한 것 하나만 사고, 나머지는 줄이는 방식이다. 절약과 자기 방어적 소비의 흐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른들의 또 다른 걱정이 쏟아졌다. “너무 개인주의적이다,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 젊은이들이 소비하지 않으면 내수 경제가 위축된다.” 욜로든 요노든, 결국 젊은 세대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이해나 성찰은 사라지고, 오직 경제 논리 속에서만 평가되는 셈이다.
아이러니는 분명하다. 소비하면 철없다 하고, 절약하면 소심하다고 한다. 무엇을 하든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이 모순은 젊은 세대의 책임이라기보다, 산업을 지배하며 그들을 유혹하고 압박해온 기성세대가 만든 모순이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도 기성세대의 비난을 방패 삼아 자기 성찰을 미루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피해자다. 산업 구조와 사회 시스템이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스스로의 책임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언제까지나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는 게 아니다. 피해를 입었더라도, 결국은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한다. 듣기 싫은 말일 수 있지만, 한국 청년들이 때로 보여주는 과도한 자기연민과 비판 회피는 미성숙의 징후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가 진짜 어른이 되려면, 기성세대의 말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조건 잘라내는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혹은 일부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자기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그 구분 능력이 없다면, 젊은 세대 또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이다.
젊은 세대의 성숙이 늦어진 원인 중 하나로 흔히 공교육의 문제가 거론된다. 한국의 교육은 지나치게 입시에 편중되어 있다. 성적과 등수는 정확히 매겨지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책임을 지고 독립할 것인지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 해결 능력, 공동체 의식, 윤리적 판단력은 시험지에 없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경쟁하는 법만 가르쳤고, 그 결과 청년들은 타인과 협력하거나 책임을 나누는 법을 배울 기회를 빼앗겼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에서의 교육 부재일지도 모른다. 부모들은 자식을 끝까지 품 안에 두고, 독립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너는 아직 어려서 몰라.” “네가 뭘 알겠어.”라는 말로 자율을 지연시키고, 동시에 좋은 성적과 안정된 직장을 요구한다. 아이는 자기 선택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부모가 원하는 궤도 위에서만 달린다. 결국 청년이 되어도 자기 판단과 책임을 감당하는 능력은 제대로 길러지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감각이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스무 살은 그래도 ‘어른 대접’을 받았다.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스무 살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았다. 군대에 가거나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에 들어가면, 사회는 그들을 어른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IMF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경제적 불안, 고용 축소, 집값 폭등 속에서 젊은 세대는 독립을 미루게 되었다. 집에서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경제적 자립은 늦춰졌다. 그 결과 서른이 넘어도 여전히 부모의 ‘귀한 자식’으로 남는 경우가 많아졌다. 부모 세대는 자기 자식을 오냐오냐 하면서도, 사회에 나와서는 다른 젊은 세대를 향해 “철이 없다”고 욕한다. 아이러니 그 자체다.
마크 맨슨은 유튜브에서 한국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공동체의 장점은 사라지고, 유교 문화와 물질주의의 단점만 남은 자본주의에 갇혀 있다고 진단했다. 나는 이 말이 단순한 외부인의 관찰을 넘어, 우리 사회가 오래전부터 품어온 병리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에서조차 유교와 자본주의에는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었다. 이를 굳이 비율로 표현해서 5:5 정도였다고 해보자. (대조를 위한 임의적 수치)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장점은 점점 희미해지고, 단점만 두드러지게 강화되어 이제는 1:9에 가까운 불균형으로 기울어졌다.
즉, 지금의 젊은 세대가 갑자기 단절을 겪은 게 아니다. 이미 이전 세대에서 징후가 있었지만, 사회는 그것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쁜 점만 엑기스처럼 농축해 물려주었다. 공동체의 연대는 사라지고, 권위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더 강해졌다. 그 결과 젊은 세대는 나쁜 유산을 거의 순수하게 상속받은 세대가 되었다.
지금껏 여행을 하며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을 다녔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 여러 유럽 국가들, 케냐와 이집트, 태국과 인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까지.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성숙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유독 그 현상이 두드러진다. 청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전제하면서도 동시에 책임을 강요하는 모순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말했다. “위기의 시대에는 낡은 질서는 죽어가지만 새로운 질서는 태어나지 못한다.”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어른이 되라는 압박은 크지만, 어른으로 살아갈 기반은 부재하다.
결국 ‘어른’이라는 말은 사회가 만든 환상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 삶을 책임지고, 독립할 줄 알며, 타인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고, 모호함 속에서 자기 길을 찾는 것 ― 그것이야말로 어른다움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른이 될 기회를 빼앗으면서 동시에 어른이 되라 강요한다. 이 모순을 풀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세대는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미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Growing old is mandatory, growing up is optional.”
“나이 드는 건 필수지만, 어른이 되는 건 선택이다.”
어른이라는 거짓말을 깨닫고, 어른다움의 진짜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비난 대신 사과와 배려, 그리고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젊은 세대 역시 피해자의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기 성찰을 통해 진짜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른이란 나이를 먹었다고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사회가 씌운 가면을 쓰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모호함 속을 걸어가며 길을 찾는 사람 ― 그가 진짜 어른이다.
* 인용 출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Maximen und Reflexionen (격언과 성찰)》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sci)
《Prison Notebooks (옥중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