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와 〈우리들의 블루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두 편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우리들의 블루스〉. 나는 그 두 작품을 번갈아 보았다. 서로 다른 공간과 인물, 다른 결을 가진 이야기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한 계절 동안 내 마음을 같은 자리에 머물게 했다. 두 제목은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나는 ‘나’, 다른 하나는 ‘우리’. 우리가 사는 시대의 인간은 언제나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 너무 개인적인 세계에 갇히면 외로움에 잠기고, 너무 집단적인 세계에 묶이면 자신을 잃는다. 〈나의 해방일지〉는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우리들의 블루스〉는 ‘우리’로 존재하며 부딪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둘의 진동 사이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나의 해방일지〉의 세계는 조용하다. 서울로 출근하는 경기도 산포의 사람들, 각자의 피로와 체념을 짊어진 채 반복되는 일상 속을 묵묵히 걷는다. 삶은 언제나 무언가가 부족하고, 그 부족함이 이미 일상의 질감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대사는 낮고 느리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그 사이의 허공 같은 표정. 이 드라마는 요란한 사건을 포기한다. 대신 세상의 중심에서 묘하게 비껴나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담는다. 직장에서 버티는 일, 가족 안에서의 어색한 연대, 그리고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 마치 살풀이처럼 응어리진 감정들이 천천히 풀려나온다. “해방이 필요해요.” 주인공 연미정의 이 말은 선언이자 고백이다. 그녀는 더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붙들지 않기 위해 해방을 말한다. 이 드라마는 빠르게 도는 세상 속에서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멈춤’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구원을 제안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 반대편에서 시작된다. 제주의 바다와 시장,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국이지만 어딘가 한국 같지않은 남쪽 섬에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살아간다. ‘나’가 아닌 ‘우리’로 존재할 때 생겨나는 관계의 소음, 그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마음.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서로를 상처 내고, 오해하고, 미워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손을 잡는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완벽한 공동체의 환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하고 다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지만, 그 불협화음이 모여 하나의 멜로디가 된다. 그것이 블루스다. 눈물과 웃음이 한데 섞인 생의 리듬.
〈나의 해방일지〉의 ‘나’는 고요 속에서 자신을 찾고, 〈우리들의 블루스〉의 ‘우리’는 소리 속에서 서로를 확인한다. 전자는 세상의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고, 후자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몸짓이다. 둘 다 현대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향해 나아간다. 도시는 욕망과 비교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잊어버린다. ‘나’는 기능이 되고, ‘우리’는 구조가 된다. 관계는 역할로, 감정은 효율로 환원된다. 이 두 드라마는 그런 세상에 대한 조용한 반항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욕망의 질주를 멈추라 말하고, 〈우리들의 블루스〉는 서로의 숨결을 다시 보라 말한다.
〈나의 해방일지〉에서의 해방은 사건이 아니라 태도다. 누군가를 이기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다. “나는 그저 지쳤을 뿐이에요.” 이 고백은 패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회복 선언이다. 반면 〈우리들의 블루스〉에서의 삶은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연대의 서사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섬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그들의 눈물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의 것이다. 서로의 삶에 기대며, 함께 버텨내는 그 모습이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두 드라마는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피곤한가. 왜 행복하기 위해 더 달려야만 하는가. 그리고 그 끝에서 무엇을 얻는가. 그 답은 두 세계 모두에 있다. 〈나의 해방일지〉는 멈춰야만 보이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들의 블루스〉는 함께해야만 느껴지는 것을 들려준다. 나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 그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지만 두 세계가 교차할 때 비로소 인간의 온기가 드러난다.
제주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한 〈우리들의 블루스〉의 마지막 장면들, 그리고 서울 외곽의 고요한 바람 속에서 끝나는 〈나의 해방일지〉의 여운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하나는 바깥으로 흘러가고, 하나는 안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둘 다 우리에게 말한다. 삶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외로움과 연대, 침묵과 울음이 교차하는 그 틈에서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결국 두 작품은 서로의 거울이다. 〈나의 해방일지〉가 ‘나’의 내면을 파고들며 존재의 고독을 비춘다면, 〈우리들의 블루스〉는 ‘우리’의 바깥을 끌어안으며 관계의 체온을 비춘다. 둘 다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감각, 즉 ‘살아 있음의 실감’을 되살려낸다. 나와 우리, 고독과 연대, 침묵과 울음이 한 몸처럼 이어진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멀리 있는 진실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누군가의 숨소리로부터. 그것이 이 두 드라마가 남긴 가장 단단한 울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