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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不安)과 불완(不完)의 사랑

왕가위의 영화

by 두둥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동화처럼 happily ever after를 꿈꾼다. 결혼식의 종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완성되는 이야기. 누군가는 뜨겁고 격정적인 불꽃을 사랑이라 믿는다. 한순간이라도 타오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은 모든 것을 버려도 될 만큼 커다란 인생의 사건이고, 어떤 이에게는 잔잔한 등불이나 따뜻한 모닥불처럼 오래도록 꺼지지 않기를 바라는 온기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부모나 친구의 사랑이 아닌,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품고 온 고독의 그림자 속에서 비롯된 에로스적 사랑, 즉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본능적인 끌림이다.


왕가위의 세계에서 사랑은 언제나 불완(不完)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은 완성되려는 순간 도망가고, 닿으려는 순간 멀어진다. 그의 인물들은 모두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불완(不完)은 언제나 불안(不安)과 맞닿아 있다. 사랑은 불완할 뿐 아니라 불안하다. 완전하지 않기에 흔들리고, 불안하기에 더욱 진실하다. 왕가위의 인물들은 그 불안정한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다. 그들은 사랑에 의지하면서도, 사랑을 두려워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이미 이별의 예감을 품은 채, 사랑의 무게를 감당한다.


〈중경삼림〉의 경찰은 떠난 연인을 잊지 못해 유통기한이 같은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은다.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알면서도 그는 매일 그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해피 투게더〉에서는 낯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남반구의 바람과 탱고의 리듬 사이에서 두 남자가 끝없이 부서졌다가 다시 이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함께할 수 없고, 떨어지려 해도 완전히 끊어낼 수 없다. 이국의 황량한 대지 위에서 그들의 사랑은 끝없는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나며, 그 사이에서 자신을 갉아먹는다. 낯선 도시의 불빛과 외로움, 타국의 언어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점점 모국어를 잃은 문장처럼 흔들린다. 불완전한 관계, 불안한 거리. 그러나 그 불안과 불완 사이에만 진짜 온기가 남아 있다.


〈화양연화〉의 두 사람은 결혼이라는 굴레의 그림자 속에서 사랑을 느낀다. 서로에게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조금씩 다가간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불완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들의 대화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우리,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요.” 그 한 문장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왕가위의 영화는 불안(不安)과 불완(不完)의 조각들로 엮인 시간의 시(詩)다. 〈동사서독〉의 사막에서는 바람이 모든 감정을 덮어버리고, 〈화양연화〉의 복도에서는 한 걸음의 머뭇거림이 한 생의 거리로 변한다. 〈일대종사〉에서는 그 불완전함을 이렇게 정의한다. “완전한 것은 그래서 불완전해 보인다.” 완전해지려는 순간, 사랑은 이미 죽어 있다. 왕가위의 영화 속 사랑은 결코 완성되지 않기에 살아 있다. 사랑이란 서로에게 닿는 것이 아니라, 닿지 못한 채 서로를 향해 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의 인물들은 늘 위태롭다. 그 위태로움이 그들의 생명이고,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다. 그들은 서로를 완전히 얻지 못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사랑은 언제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만 빛난다. 서로의 마음이 정확히 맞닿는 순간, 사랑은 사라진다. 왕가위의 세계에서는 그래서 늘 한 사람이 먼저 걷고, 한 사람이 조금 늦게 돌아본다. 한 사람이 머무를 때, 다른 한 사람은 떠난다. 그 어긋남 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감정은 완성된다.

그의 영화의 편집은 사랑의 리듬을 닮았다. 한 장면은 너무 오래 머물고, 다른 장면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사랑이 그렇듯, 어떤 순간은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어떤 순간은 견디기 힘들 만큼 빠르게 흘러간다. 〈화양연화〉의 슬로모션 장면들은 마치 사랑이 기억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사람은 결코 사랑의 전부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몇 개의 장면만, 그때의 공기와 함께 남는다. 왕가위는 그 기억의 파편을 영화로 엮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늘 감정의 편집이다. 사랑의 이야기라기보다,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의 이야기다.


그의 인물들은 결국 모두 혼자 남는다. 그러나 그 외로움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사랑은 함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함께 있었던 기억을 품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는 앙코르와트의 벽에 비밀을 속삭인다. 그는 더 이상 그 사랑과 함께하지 않지만, 그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말하지 못한 말’로 남는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형태의 지속이다.


사랑은 아마도 그런 것이다. 완전하지 않기에 아름답고, 불안하기에 진실하다. 사랑이란 서로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흔들리는 일이다. 사랑은 완성될 수 없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만 살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늘 질문을 남긴다.


아, 사랑은 그 마음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오직 그 마음만이 사랑이던가.


그 질문이 끝나지 않는 한, 사랑은 여전히 계속된다. 마치 왕가위의 영화처럼 — 불안(不安)하고, 불완(不完)한 채로. 그러나 그 불안과 불완의 사이에서, 사랑은 조금씩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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