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째서 그토록 아름다울까. 화려한 영웅이나 로맨스의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밑바닥 인생을 기어 다니는 비극의 주인공, 고독에 몸부림치는 패배자조차 스크린 안에선 기묘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심지어 그들의 고통조차 미학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의 거울을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비극적이라기보단 차라리 희극에 가깝고, 장엄하기보단 비루하고 초라하다.
이 괴리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편집(Editing)'의 유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지루한 공백이 없다. 밥을 먹고 양치를 하다가 치약을 흘리는 장면, 버스를 기다리며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 따위는 과감히 잘려 나간다. 오직 드라마틱한 순간, 감정이 고조되는 컷들만이 살아남아 연결된다. 그러니 그 삶이 매혹적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반면 우리의 인생은 '노 컷(No Cut)'이다. 지루함, 민망함, 찌질함이 여과 없이 상영된다. 그래서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내 인생에도 프리미어 프로나 파이널 컷 같은 편집 툴이 있다면 어떨까?
신이 내게 나타나 내 전체 인생 중 딱 24시간 분량의 '삭제권'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는 인생 최악의 하루를 통째로 들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면, 그 24시간을 아주 잘게 쪼개서 쓸 것이다. 1분, 아니 30초 단위로 나누어 내 인생의 필름 곳곳에 박힌 '이불킥'의 순간들을 외과 수술하듯 도려내는 것이다.
운전을 하다가, 혹은 한가롭게 산책을 하다가 문득 "악!" 하고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짓궂게 굴었던 일, 지금 와서 돌아보면 왜 그랬을까 싶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일화들, 대학교 시절 철없이 내뱉었던 말들, 호감을 보였다가 창피만 당했던 어설픈 다가섬과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던 지난 연애들….
그뿐인가.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뱉었던 날카로운 말들, 반대로 누군가에게서 받아 평생 가시처럼 박힌 모멸감의 순간들. 그 찌질하고 화끈거리는 순간들을 모조리 찾아내 'Delete' 키를 누른다. 컷, 컷, 컷. 그렇게 잘라낸 시간들을 합쳐 24시간을 채운다면, 남겨진 내 인생의 필름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매끄럽고 근사해질까?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주인공 조엘은 아픈 이별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라쿠나사'를 찾는다. 그곳은 말하자면 인생의 편집실이다. 고통스러운 기억, 실패한 연애의 흔적을 뇌에서 지워준다. 하지만 영화는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싸우고, 소리치고, 찌질하게 매달렸던 그 'NG 컷'들이 사라지자, 사랑했던 감정의 맥락마저 함께 무너져 내린다.
심리학에서는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는 자아는 과거의 에피소드들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내가 겪은 사건이 곧 나다. 철학자 폴 리쾨르는 인간을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라고 정의하며,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서사화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한다고 했다.
만약 내가 나의 '찌질한 역사'를 편집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의 실수가 머리에서 지워진다면, 나는 아마 내일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뜨거운 주전자에 데인 기억을 지우면 다시 주전자를 잡게 되는 것처럼, 부끄러움과 후회는 나를 같은 늪에 빠지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의 이 유명한 말은 너무 비장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사상인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는 이 맥락에서 꽤 위로가 된다. 니체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그것이 고통이든 상실이든 추한 모습이든, 그 필연성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편집하고 싶은 욕망조차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건 완벽하게 멋진 장면이 아니었다. 주인공이 무너지고, 울고, 바닥을 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때 느껴지는 전율이었다.
상상처럼 신이 내게 24시간 편집권을 준다면 아마 덥썩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편집은 불가능하다. 좋든 나쁘든 그 모든 컷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찌질했던 나는 훗날의 신중한 나를 만들었고, 상처받았던 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나를 만들었다.
더 멋있는 사람이 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비루함을 견디며 다음 장면으로 걸어 나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생이라는 긴 수행(修行)이자, 편집 없는 '롱테이크' 영화를 찍는 배우의 자세가 아닐까.
내 인생엔 'Cut' 사인이 없다. 그래서 지루하고 때론 괴롭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는 오롯이 내 것이다. NG는 없다. 그저 계속되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