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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Jul 10. 2022

포켓몬의 세상

아이가 있으니 요즘 온통 포켓몬 이야기만 듣고 있다. 대부분은 포켓몬으로 인해 파생된 상품들의 이야기다. 


'엄마, 친구 누구는 뮤츠 띠부실을 갖고 있데'

'엄마, 반 친구가 포켓몬 카드 한팩 주기로 했어. 걔네 삼촌이 포켓몬 소개하는 유투버래'

'엄마, 포켓몬빵 신상이 나왔데!'


학교만 다녀오면 아이는 포켓몬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바쁘고 관심이 온통 포켓몬에 집중되어 갖고 싶은 것도 많이 생겼다. 포켓몬의 상술에 아이 머릿속이 지배를 당한 것 같다. 


급기야는 학교가 끝나고 학교 앞 문방구를 한 번만 가자고 조른다. 문방구에는 포켓몬 카드를 한팩씩(5장씩 들어서 한팩당 천 원이다) 팔고 있는데 엄마가 바로 사주지 않을걸 아니까 구경만 하자고 한다. 막상 가서 있으면 사달라고 떼쓸 거라는 걸 알지만 문방구 같이 못 가주겠나 싶어서 한 번씩 같이 가준다. 문방구에 자주 데려가진 않아서 어느 날 내 지갑에 현금 천원이 있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한팩을 사줬는데 그다음에 갔을 땐 포켓몬 카드가 품절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포켓몬 카드가 다시 유행이라 문방구에도 항상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아이는 학교 친구에게 듣고 와서는 '엄마, 포켓몬 카드가 문방구에 매주 수요일마다 들어온데, 친구는 1시에 샀다고 하는데 우리가 4시에 갔을 땐 없었어.'라고 수요일에 빨리 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유행이 끝나면 종이 쪼가리가 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사주고 싶지 않지만, 아이의 포켓몬에 대한 열망을 마냥 꺾을 수만은 없고 난감하기만 하다. 


지난달 아이 생일선물로 사준 포켓몬 딱지 두 박스는 이미 뒷전이 된 지 몇 주 되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놀이터만 가면 아이들이 놀이터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포켓몬 딱지 치기를 하며 딱지를 많이 갖고 있는 아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장마가 오고 무더위까지 오며 놀이터에 모이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니 자연적으로 딱지의 관심이 꺾였다. 이제 와서 아이는 '그때 포켓몬 딱지 말고 카드를 샀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유튜브에서 카드 언박싱하는걸 보며 사고 싶은 열망이 더 생기는 것이 느껴진다. 학교를 안 가게 할 수도 없고, 주말에만 보는 유튜브를 못 보게 할 수도 없고 아이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싶은데 포켓몬에만 꽂힌 아이에게 다른 걸 내밀어서 관심받기란 쉽지 않다. 아직은 스스로 돈을 벌거나 쓸 수 없어서 맘대로 살 수 없지만, 조금만 풀어주면 매일 문방구에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가 영어 그림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스티커 하나씩 붙여주고 100개를 다 완성하면 만원씩 주고 있는데, 처음 천권 읽기 할 때는 갖고 싶은 레고가 있어서 의욕적으로 읽다가 천권이 끝나고 갖고 싶은걸 사고 난 뒤 영어책 읽기가 시들해졌었다. 포켓몬 카드를 너무 갖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영어책 읽고 돈 벌어서 사라고 꼬드겼다. 포켓몬 카드가 문방구에서 한팩당 천 원이지만 박스로 사려면 8-9만 원은 줘야 했고 확장팩의 종류에 따라 더 비싼 카드들도 많았다. 아이의 욕구를 생산적인데 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어책 읽기로 받은 돈은 네가 사고 싶은 거 아무거나 살 수 있게 해 줄게'라고 장난감 못하게 했던 제한을 풀어주었다. 생일 때 아니면 사주지 않는 만화책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갑자기 눈에 불을 켜고 영어책을 열심히 읽는다. 평소에 하기 싫어했던 음원 듣기를 하면 보너스로 스티커를 더 붙여주기로 하니 며칠을 또 신나게 읽고 있다. 


어느 날은 아이 친구들이 '포켓몬고'게임을 하고 있으니 본인도 게임을 너무 하고 싶다고 또 졸랐다. 휴대폰이 아직 없지만 집에서만 쓸 수 있는 공폰이 있어 거기에 깔아주었는데 주말에 아빠와 포켓몬을 잡으러 아파트 한 바퀴를 돌며 제법 잡은 모양이다. 2017년에 그 게임을 한참 했었는데 아이 때문에 지워놨던 앱을 다시 깔았다. 내 포켓몬 목록을 보니 천 개 정도의 포켓몬이 여전히 남아있다. 아이가 엄마 포켓몬을 본인에게 달라고 하니 왠지 그냥 주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네가 잘해야 주겠어. 뭐가 있을까. 요즘 구구단 하지? 7단 외울 수 있어?"

"7일은 7, 7이 14... 7 구 63!'" 

구구단을 달달 외우고 있진 않았고 시키지도 않긴 했지만 학교 수학책의 다음 단원이 구구단이라 이제 외우게 해야 할까 생각하던 차에 시켜봤더니 더듬더듬 외운다. 잘했다고 포켓몬 한 마리를 주었다. 아이가 달라고 조를 때마다 구구단을 시켜서 외우면 주고 있다. 이제 9단만 남았다. 


아이가 어려서 아직까지는 엄마의 계략에 넘어가고 있지만 조금만 크면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싫은데?'라고 해버릴 것만 같다. 이 포켓몬의 세상에서 어떻게든 생산적인걸 시키려고 하는 엄마의 노력을 아이가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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