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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Dec 06. 2022

산타를 믿으십니까?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엄마, 산타는 정말 있어?”

이전에 물어보던 것과는 다른 결연한 표정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되었으니 학교에서 이미 아이들끼리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을까 싶어 나는 아이에게 되물었다.

“어디까지 듣고 왔어? 뭘 알고 있어?”

“엄마, 아빠가 산타야?”

기다리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진실을 알려줘야 할지 난감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아서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진실을 알고 싶어? 산타가 있다는 걸 믿고 싶어?”

“진실을 알고 싶어, 산타도 믿고 싶어”

아이의 표정을 다시 보고 머리를 굴리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래도 진실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음.. 산타는 바빠서 대신 엄마, 아빠가 선물을 준거야”

내가 한마디 한마디 말할 때마다 아이의 표정이 바뀌었는데 최종적으로 낙심한 표정으로 변했을 때 좌절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져서 내가 더 슬펐다. 아이가 어릴 때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꽁꽁 숨겨왔던 비밀을 이제 나이가 들었다고 더 이상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슬프게도 나는 당연히 산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도 그랬고 여유 있는 삶도 아니었기에 산타를 가장한 부모의 선물도 받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가 없는 걸 알면서도 매년 올해는 산타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20대 후반 호주에 있을 때 외국 친구들과 산타의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다. 언제 산타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서로 이야기하며 부모님이 산타였다는 사실에 너도 나도 충격을 먹었다며 서로 공감을 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동요되어 웃고 있는데 날보고 '너는?'이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이야기가 없어 순간 나의 파괴된 동심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 나는 문화 차이인데도 못 사는 나라에서 온 것 같고,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기분이 들어서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충격이 한동안 오래가서 내 아이를 키울 땐, 산타를 사수해서 아이의 동심을 꼭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그림책에는 항상 산타와, 산타를 돕는 엘프와 루돌프 이야기, 크리스마스전 나쁜 행동을 많이 해서 나쁜 아이 명단에 있는 아이들이 산타의 도움으로 착한 일을 하며 착한 아이 명단으로 옮겨져 선물을 받는 이야기, 산타할아버지가 휴가 가는 이야기 등 산타에 대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정말 산타가 있다고 믿었고 산타를 위해 어떤 해는 초콜릿과 쪽지를 놓기도 했고, 어떤 날은 클레이로 산타 모형을 만들어 산타에게 주는 선물로 트리 밑에 두기도 했다. 산타가 왔다 갔다는 표시를 해야 해서 남편은 아이가 둔 초콜릿은 하나 뜯어먹었다. 그런데 아이가 만든 산타 모형은 간직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어서 그냥 뒀더니 아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인지 몰라서 안 가져간 거 같다며 서운해했다. 아이가 5살, 6살 때 이야기다. 7살 크리스마스에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을 때는 여행 전 몰래 선물을 아이 침대 머리맡에 두고 와서 집에 도착한 아이는 우리가 없는 사이에 산타가 놓고 왔다고 믿었다.  


올해는 내 키보다 더 큰 크리스마스트리 구매했지만 아이는 이제 산타의 존재를 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은 깨지지 않은 것 같다. 산타는 없어도 집에 트리는 있고, 엄마, 아빠가 여전히 선물도 주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의 환상은 오아시스의 신기루 같다. 25일 전까지 환상이 가득하지만 막상 25일이 되면 평소와 똑같은 날처럼 어른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작년부터는 가족끼리 깜짝 선물교환을 하기로 했다. 환상에서 머물지 않고 이벤트를 만들어 매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 집에는 산타가 찾아오지 않지만, 서로가 산타가 되어 올해는 어떤 선물을 주고받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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