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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Jan 03. 2023

나도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

유튜브에 올라온 `알쓸인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의 짧은 영상을 보고 프로그램이 궁금해 찾아보았다.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한 줄로 소개되어 있다. 유명한 작가, 물리학자, 법의학 전문인, 천문학자 그리고 영화감독과 가수가 각자의 지식을 뽐내며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려워 보이는 주제를 다방면 지식인들이 쉽게 이야기해 주니 내 머릿속에 지식이 쌓여 가는 것 같았다. 그중 공부만 했을 것 같은 예쁘고 하얀 얼굴로 패널들과 나누는 심채경 박사의 천문학 이야기는 굉장히 깊고 심오했다. 그녀를 검색해 보니 그녀가 낸 책이 있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제목이었는데 프로그램의 인기 탓인지 도서관에선 이미 대출 중이었다. 


누군가 천문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에게 물으면 그때마다 본인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사는 물론 석사, 박사 과정까지 마쳐야 하고 박사를 마치고 난 후 그때부터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기업에 취업하여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는 동안 본인은 대학원 시절을 묵묵하게 견뎌야 한다. 그 시간을 즐기면서 할 수 있어야 가능하기에 본인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심채경 박사 스스로는 그런 삶을 버티는 게 어렵지 않은 사람이라 가능했다고 한다. 나도 한때 천문학을 동경했지만 한순간의 관심으로 끝나고 깊이 빠지지는 못했다. 게다가 나는 엉덩이가 너무나 가벼운 사람이라 앉아서 연구하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 자신했다. 그녀의 책 제목에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 이유도 천문학자는 별을 보는 시간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연구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별을 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오히려 철학자나 공상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p13 


책의 초반에 나오는 글을 보고 나도 그들을 동경하게 되었다. `무해한 사람들`이라는 단어에 나 또한 그런 무해한 사람들의 그룹에 합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처럼 내가 동경하는 것에 고민하고 즐겁게 몰두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 되고, 그 몰두가 언젠가 인류에 도움이 된다면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


학문은 정제된 기록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발견한 것이나 실험한 내용, 조사 결과와 그에 관한 생각 등을 잘 정리해서 이름, 날짜와 함께 기록해 두면, 훗날 누구라도 그것을 참조해 재현해 보고 거기에 새로운 부분을 더해 다시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다른 학자들이 따라 해 보았을 때 같은 결과가 재현되도록 레고 조립 매뉴얼처럼 정확하고 자세해야 한다. 학자들은 교류를 통해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기록을 발표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학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기 위해서 편지 형식을 취했던 것이 오늘날 논문의 전신이다. 논문에서는 과거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연구하고 논했던 내용을 정확히 밝히며 인용한다. 남의 업적을 내 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p59


요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글을 잘 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가수, 화가, 의사, 천문학자….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매일 일기를 쓰며 자신의 이야기, 감정을 드러내며 머릿속에 정리하고 회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기를 쓰면 자연스레 글쓰기 연습이 되고 기록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다. 내가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선조들에게 역사를 배웠고, 또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 we'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 논문은 대부분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채워 넣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위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인데, 그래도 논문을 쓰는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학위논문을 쓸 무렵에는 교수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고 선배들도 그렇게 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 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받고도 한 참이 지난 후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 p266


논문의 저자를 우리라고 말하는 이유가 너무 사랑스럽다. 나를 우리로, 우리를 인류로 확대한다면 세상에 나눌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천문학은 좁았던 인간들의 시야를 넓게 트여 주는 것 같다. 너무나 넓어서 우주에서 보면 먼지로도 안 보일 나 자신이 한껏 초라해지기도 하지만 우주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갖고 인류를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간다면 언젠가 무해한 사람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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