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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Oct 21. 2023

길치의 도전?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튼튼한 두 다리에 교통이 잘 되어있는 수도권에 살다 보니 운전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가 얼마나 길치인지 알게 되어 이제는 운전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길치에 방향치라 지도도 잘 못 보는데 운전하게 된다면 매번 이상한 길로 빠져서 뱅뱅 돌아올것이 뻔하다. 보통 처음 간 길은 일주일은 가봐야 길을 헤매지 않는다. 이사하면 예사로 일주일은 집에 가는 길을 헤매고, 직장을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버스나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간 경험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이상함을 감지하면 내려서 반대편 정거장이나 플랫폼에서 다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차가 길을 잘못 들어서면 일방통행과 좌회전 금지, 진입 금지 등의 장애물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몇 배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언젠가 시트

콤의 한 장면처럼 뜻하지 않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도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현재 내 자리는 운전석 옆자리이다. 아이가 생기고 몇 년간 뒷자리로 밀려났었다. 운전석 뒤 옆자리, 영화 속 사장님이 앉는 자리지만 현실은 카시트에 앉아있는 진짜 실세 옆에서 시중 두는 유모였다. 간식 달라하면 간식 챙겨주고, 먹다 흘리면 닦아주고 어디 불편함이 없는지 극진히 모셨다. 아이가 점점 크고 주니어 카시트로 바꾸고 몇년 지나 이제는 주니어 카시트도 떼어야 할까 고민할 때, 남편은 내가 다시 앞자리로 되돌아오기를 바랐다. 사실 아이가 크고 나의 도움이 필요 없어도 차에서 잘 버티게 되면서 어느 때부터 나는 사장님처럼 뒷자리에서 졸고 있었다. 남편은 빈 옆자리가 싫었던 모양이었다. 아이가 말을 알아들으면서부터 엄마는 앞 좌석에 앉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뒷자리에서 졸고 있던 나에게 옆자리로 돌아오기 요청했고 아이도 수긍했다. 


아이가 귀찮게 안 한다면 뒷좌석은 꽤 편했다. 하지만 운전자 옆자리에 앉으면 긴장감이 생겼다. 뒷자리보단 앞자리에서 차가 오고 감이 너무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오른쪽에 차가 조금이라도 붙는다 싶으면 불안했다. 저 멀리서부터 2차선이 1차선으로 합류되며 옆 차선의 차가 밀고 들어올 때는 마음이 쫄린다. 연애할땐 운전자보다 옆에 앉은 내가 더 놀라 소리를 치다 보니 운전석에 있는 남편도 조마조마해져서 차라리 눈감고 자라고 하기도 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눈을 질끈 감고 있다 많이 졸기도 했는데 요즘은 의리로 눈을 뜨고 있다. 운전자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 깜짝깜짝 놀라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지만 긴장이 될 때는 겉으로 내색

하지 않고 발가락을 꾹 움츠리고 있다. 운전을 못 해 감이 없어서 긴장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차라리 운전을 하면 나을까 싶기도 하다.


어릴 때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안 하다가는 더 나이 들면 도전도 안 하고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할 수 있는 건 해보려고 하는데 운전도 그중에 하나다. 길치를 극복하진 못하겠지만 몇 년 전부터 꿈틀대는 운전 욕심,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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