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 나만의 시간

by 레이지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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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다. 고전읽기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이라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생각보다 얇아서 다행이라 여겼다. 이 책은 1929년, 울프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했던 ‘여성과 문학’에 대한 강연을 수정하고 편집하여 출간한 것이다. 당시 1920~30년대 영국은 여성 참정권이 확대되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적·경제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르는 시대였다. 여성은 교육받을 기회조차 적었고, 결혼 후에는 독립적인 경제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특히 문학에서는 남성 중심의 전통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여성 작가들이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작은 아씨들’의 ‘조’가 떠올랐다. ‘작은 아씨들’의 배경은 자기만의 방보다 더 이전인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전후의 시대다. 당시 미국 역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여성은 결혼하여 좋은 가정을 꾸리고, 남편과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조’는 작가의 꿈을 품었지만, 여성 작가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확실히 높아졌다. 여성 작가 역시 더 이상 드문 존재가 아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도 여성이며,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가장 어린 여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기업의 고위 임원 대부분이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육아 문제로 인해 많은 여성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현실도 여전하다.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연간 500파운드는 오늘날 환산하면 약 5~7천만 원 정도다. 이는 당대의 중산층 여성이 일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울프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강연할 수 있었던 것도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채 삼십 분도 되지 않는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받아 왔다. 시나 희곡보다는 산문과 픽션을 쓰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집중력이 덜 요구되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조차 생애 마지막 날까지 방해받으며 글을 써야 했다. p103


돌아보면, 결혼 후에도 내 책상의 작업 공간은 존재했지만,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나에게 ‘자기만의 방’은 다름 아닌 ‘시간’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새벽 시간이었다. 출근 전, 남편도 아이도 아직 잠들어 있는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출근 준비를 하기 전까지가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때는 회사를 다녔기에 경제적 여유는 있었지만, 나만의 방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금은 나만의 방을 가졌지만, 울프가 말한 ‘500파운드의 여유’는 없다.


다만, 희망적인 점은 현대에는 여성이 능력만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이제 나만의 방을 가졌으니, 다음은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일이다. 내 삶에서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를 모두 가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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