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잤다. 꿈에서 나는 몹시 좁고 경사가 가파른 길을 기어 올라가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중간쯤에서 포기할까 싶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했다. 그 길을 함께 오르고 있는 이들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성인인 내가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정말 금세 집으로 올라갔다. 다시 장면이 바뀌었다.
십여 년 전, 호주에서 함께 살던 제니스가 생각났다. 작년부터 메일에 답장이 오지 않아 내심 불안했는데, 어느 좁은 빌라의 계단을 내려가던 중 1층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언제 한국에 왔어요?”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며, 젊고 밝은 얼굴의 제니스가 나를 꼭 안았다. 잠시 후, 내가 아이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며 제니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하고 통화음이 연결되던 그 순간—나는 꿈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제니스는 내가 호주에 있을때 오십대 중반에서 육십대 쯤 되어 보였기에, 지금은 못해도 70대가 되었을 텐데 건강이 어떨지 늘 마음 한켠이 불안했다.) 그 인식과 함께 나에게 마지막 인사하러 온것인가 싶어 눈물이 터질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졌고, 잠에서 깰 듯하다가 다시 꿈속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도 좁은 공간이었다. ‘왜 내 꿈의 공간은 이렇게 늘 좁을까’ 하고 중얼대며, 반쯤은 꿈이라는 걸 아는 채로 또다시 꿈속으로 들어갔다. 이후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보통 낮잠을 자면 20분쯤 뒤에 눈이 떠져 알람을 따로 안한다. 오늘은 정신없는 꿈을 꾸다 보니 한 시간 반이나 지나 있었다. 평소보다 오래잤더니 머리가 띵하고, 오히려 더 피곤했다. 꿈의 여운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하루 종일 밖에 나돌았던 것이 몸에 무리가 되었던 걸까.
요즘은 꿈을 꾸면 습관처럼 챗GPT에게 해석을 맡긴다. 결과는 늘 비슷하다. 꿈은 현실을 비춘다는것. 신경 쓰이는 일이 있을 때면 그것이 형태를 바꿔 꿈에 나타난다. 뱀에게 쫓기기도 하고, 모르는 강아지가 나에게 짖기도 한다. 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하지만, 결론 없이 끝난다. 해석은 언제나 같다. ‘신경 쓰이는 일, 감정의 충돌, 내적 갈등이 있다.’
오늘은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꿈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좁은 공간, 오래된 얼굴,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그것들은 결국 내 안에 쌓여 있던 피로와 그리움의 형상일 것이다. 꿈은 늘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보여준다. 요즘 무엇을 그렇게 신경 쓰고 있는지, 몸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말없이 알려준다. 그렇게 꿈은 나를 흔들고, 또 다독인다. 오늘의 꿈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여전히 좁은 길 위에 서 있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 길은 다시 넓어질 것이다. 쫓기던 순간조차 언젠가는 평안으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p.s 제니스가 건강하길 (16년전 제니스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