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세계 명작 중에서도 특히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요조의 삶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는데, 작가는 『인간 실격』을 세상에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요절했다.
인간의 감정과 사회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요조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늘 익살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극심한 공포와 소외감을 느껴 술, 여자, 타락한 생활에 의존하게 되고 여러 사건을 거치며 점점 삶이 무너진다. 결혼을 통해 잠시나마 구원의 가능성을 보지만, 결정적 사건을 겪으며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고 느끼게 되고 결국 사회에서 완전히 밀려난 채 살아간다.
요조는 부잣집 막내로 태어났지만 부모에게서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반대로 잘생긴 외모로 인해 여자들에게 과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 오히려 그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요조의 삶에 진정한 인간관계가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면 의문이 남는다. 그는 어떻게 하면 여자가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능숙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지는 못했다. 여성편력 역시 이러한 불안정과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요조의 행동도, 주변인들의 반응도 명확한 기준이나 지지가 없었고, 요조 자신도 끝내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다. 작가는 요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찾아보니 요조와 거의 동일한 인물이었고, 결국 그는 자신의 경험을 요조에게 투영하여 세상의 이해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내고서도 그는 삶을 버텨내지 못했다.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 모두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자살을 선택했고, 그마저도 혼자 하지 못해 당시 함께하던 여자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 상대만 죽고 본인은 살아남는 비극도 겪었다. 그만큼 그의 영혼은 극도로 나약했고, 삶을 자신만의 힘으로 지탱할 기반이 없었던 것이다.
40대의 나는 요조도, 다자이 오사무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설이 출간된 전후 일본 사회는 전쟁 직후의 혼란이 가시지 않은 시대였고, 그 시대의 젊은층은 요조의 나약함과 불안을 자신들의 상황에 투영하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20대의 나를 돌이켜보니 하루키의『노르웨이의 숲』에 열광했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 와타나베 역시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한창 그의 소설에 빠져 있던 시절, 나는 와타나베가 좋아하는『위대한 개츠비』를 읽었고, 살아 있는 작가의 책을 읽지 않는다는 그의 허세를 은근히 따라 하며 나만의 감성에 취하곤 했다.
내 삶과 아이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나에게 불안 속에 헤매는 요조는 더 이상 공감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10~20대의 불안 속에 살아가는 젊은 독자들에게는 요조가 자신의 상처를 비춰볼 수 있는 중요한 거울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그들처럼 불안의 시기에 누군가 곁에서 붙잡아 주지 않으면 한 영혼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부모가 된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힘이 결국 관계와 돌봄에서 비롯된다는 단순한 진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