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그 소년이 또 오지 않기를. 그 소년을 기억할 수 있기를.

by 레이지살롱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 되니까 총을 쌌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1980년, 고립된 광주에서 외로이 싸우던 학생들, 청년들, 그리고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였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 또는 역사의 기록을 읽는 기분에 가까웠다. 내가 태어난 해에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너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고, 어쩌면 불과 얼마 전에도 일어날 뻔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7~80년대 배경의 드라마를 보며 그 시절의 감성을 좋아했다. 전화기도 흔치 않던 시절, 편지로 소식을 전하던 낭만적인 시대라고 느꼈고, 왜 나는 그때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아쉬움도 품었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생각은 달라졌다. 만약 그때 태어났다면 나는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거나, 다른 집 식모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80년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고, 돈도 백도 없는 집안에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누군가 투쟁하고 맞서 싸워온 결과로 세상이 그 만큼 좋아진게 아닐까 생각했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왔다. 해방 전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자행했던 잔인한 고문과 감시 방식에 큰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 군인들과 경찰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시민들을 괴롭혔다는 기록을 마주했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부 군인들이 다친 시민들을 도와주었다는 증언도 남아 있지만, 대부분은 시민을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적으로 규정하고 없애야 할 반역의 대상으로 몰아갔다. 국가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묻게 되는 혼란스런 순간이었다.


“달은 밤의 눈동자래. 모임의 막내였던 당신은 어쩐지 그 말이 무서웠다. 저 검은 하늘 가운데, 얼음같이 하얗고 차가운 눈동자 하나가 침묵하며 그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감시 속에서 살아왔으면, 밤하늘을 밝히는 달조차 눈동자로 느껴졌을까. 그 문장을 읽으며, 공포가 일상이 된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2024년 겨울, 계엄 선포 소식이 다시 울려 퍼졌을 때 곧바로 국회로 달려가 군인들을 막아선 시민들 가운데에는 젊은 학생들과 직장인들도 많았다. 나는 가족여행을 위해 밤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 뉴스를 보며 그 상황을 접했지만 그 심각함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미 5년 전에 이 책을 한 번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번에 독서 모임을 통해 다시 읽으며,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사고, 읽고, 이야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 한강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쓰는 과정이 몹시 괴로웠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결국 완성해 세상에 내놓았고,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한강작가를 생각하며 창작자로서의 책임과 용기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괴롭지만 꼭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아직 나에게는 그 답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언젠가는 환경과 인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그로 인해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불편하더라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 알지 않으면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이야기 말이다. 이 책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질문을 남길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말하는 일. 그것이 과거를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주는 가장 강한 힘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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