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는 반경 5m 안에서 고양이 한 마리쯤은만날 수있다. 터키의 고양이들은 우리나라의 길고양이들처럼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관심을 보이며 먼저 다가온다. 길을 가다 눈이 마주치면 “메르하바(안녕)” 하고 인사라도 건네는 듯 자연스럽게 다가오는데, 그 모습은 마치 강아지 같다.
한편 터키의 길거리에는 제법 큰 개들도 바닥에 느긋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개들은 좀처럼 사람을 보고 짖거나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와 고양이의 역할이 바뀐 듯한 풍경이다. 길가 곳곳에는 고양이들을 위한 쉼터와 물통이 놓여 있고, 고양이 사료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개밥처럼 보이는 음식을 고양이에게 직접 주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고양이가 있다. 식당, 마트, 카페, 술집 가릴 것 없이 고양이가 들어와도 아무도 내쫓지 않고 불편해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고양이가 의자 한 자리를 차지하면, 그 순간부터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고양이의 자리가 된다. 돈 한 푼 내지 않는 공짜 손님이지만, 주인도 손님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귀여운 손님으로 대할 뿐이다. 가게 안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원래 그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인지, 우연히 들른 손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실제로 한 카페에서 외부에서 들어온 고양이가 한자리 차지하고 자고 있었는데 빈테이블이 없게 되자 고양이가 자는 테이블에 빈 의자를 가져와 고양이를 깨우지 않고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의 이런 태도를 보고 있자니, 터키 길고양이들의 당당한 모습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문득 터키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어떤 빚이라도 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길에 고양이가 많고, 또 사람들과 이렇게 친숙한지 궁금해졌다. 알아보니 그 이유에는 종교적 배경과 실용적인 역사 모두가 있었다. 터키는 이슬람교 비중이 높은 나라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고양이는 오래전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아왔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고양이를 무척 아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기도를 드리려는데 고양이가 옷소매 위에서 자고 있자,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소매를 잘라내고 자리를 떴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또한 고양이는 스스로 몸을 단정히 하는 깨끗한 동물로 여겨져,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오스만 제국 시절 이스탄불의 집들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졌는데, 이는 쥐가 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쥐는 전염병을 옮기고 식량을 갉아먹는 골칫거리였고, 이때 고양이들은 쥐를 잡으며 도시의 수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고양이를 ‘떠돌이’가 아닌 ‘고마운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인식은 지금까지 이어져, 터키에서는 길고양이를 ‘모두의 고양이’로 여기는 시민 의식이 자리 잡았다. 2004년에는 동물보호법이 강화되어 길동물을 함부로 해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나에게 터키는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도시다. 20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보다 지금의 터키는 관광객에게 다소 가혹한 도시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 계속 되는 인플레이션으로 터키 화폐인 리라가 불안정해지면서 유명 관광지의 입장료는 유로로 받으며 자국민보다 비싸게받고, 택시 기사는 관광객에게 더 높은 요금을 부르며, 관광지 물가 역시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고양이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자연스럽게 사람 곁에 머물며 아무 조건 없이 환대해준다. 관광객에게는 점점 인색해지는 도시 한가운데서, 고양이만은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터키에서 느낀 가장 변하지 않는 환대는 사람도, 도시도 아닌 고양이에게서 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