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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Jan 04. 2022

삶은 늘 여기에

"빈이는 수제비 몇 개?"  

"저는 세 점 먹겠습니다."  

"나는 두 점이니까 그럼......"


납작한 수제비 사리를 다섯 점 집어서 각종 버섯이 수북한 접시 위에 올리곤 자리로 돌아왔다.  

쌀쌀한 겨울날 팔팔 끓는 육수에 소고기와 채소를 익혀먹는 샤부샤부를 저녁 메뉴로 제안한 건 20대 후배 빈이었다. 며칠 뒤면 가을부터 하던 일 하나가 끝나 방송국에서 얼굴 보기 어려워진 후배들과 한 명씩 만나 조촐한 저녁식사를 나누던 주간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흉도 보고, 방송국에 도는 새로운 소문은 없는지 따위 의미 없다면 없을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칼국수와 달걀죽까지 야무진 코스 식사가 끝나 있었다. 우리 둘 다 낭비를 싫어하는 성격 탓에 엄격한 안배를 통해 음식물 쓰레기를 거의 남기지 않은 깔끔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 동안 나란히 선 빈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자 그가 물었다.   


"작가님 왜 그러세용?"

"그냥, 네 얼굴을 자꾸 보고 싶어서."  


그건 진심이었다. 다르게 표현할 길 없는 딱 알맞은 설명. 당분간 잘 못 보게 될 후배의 얼굴을 되도록 오래 눈에 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게는 일하면서 만난 지인들이 꽤 많고 그들 각자와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크기의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누군가와는 적의 가득한 사이로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게 누구든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내겐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내 삶의 중요한 것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고 믿던 시절에는 누구를 만나도 무엇을 해도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려웠다. 이 친구는 나와 이만큼 친하니 이 정도로 지내면 되겠고, 저 친구와는 이 정도 관계는 유지해야 되겠고...... 누구와 함께여도, (심지어 가족이나 애인이어도) 내 삶에 진짜 중요한 무엇은 따로 있으며 그것을 위해 에너지를 남겨두려는 버릇이 있었던 것 같다. 정작 그 중요한 그것이 대체 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면서.  


"작가님 과일 드실래요?"


후배는 떠나는 작가님께 대접한다며 자기가 밥을 사놓고도 디저트까지 쏜다며 손질된 과일을 파는 가게로 자꾸만 나를 이끌었다.  


"배불러 너나 먹어."

"알겠습니다용."


과일 가게에 들어간 후배는 배를 주문했고 우리는 작은 과일 가게에서 잠시 추위를 피하며 과일이 손질되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잘 손질된 배가 들어있는 상자를 손에 들고 우리는 조금 더 걷다가 내가 타는 버스 정류장에서 가볍게 한번 안고서 헤어졌다.   


집에 가고 있는데 후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작가님, 배 진짜 달아요!"

"그래 맛있게 먹어라.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


매일 부대끼며 낄낄대고 짧은 산책도 함께 나누던 동료들 중엔 훗날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이 더 많겠지만 지난겨울을 매 순간 뜨겁게 채워준 그들과의 시간을 잊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늘 여기에 있고, 내 옆자리의 그가 가장 소중하며, 지금이 가장 찬란하며 눈부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스승 같은 동생의 둥그런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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