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한 식사를 지향하면서부터 밥상에 오르거나 장바구니에 넣는 식재료 종류가 줄어들고 있다. 영양소와 예산, 취향을 고려해 몇 가지를 정해놓고 구입한다. 가장 활용도가 높은 달걀을 기본으로, 양질의 지방과 단백질 섭취를 위해 한돈과 호주산 살치살을 사고 가벼운 저녁식사에 필요한 두부를 빠뜨리지 않는다. 감자, 당근 양파 같은 기본 채소들 외엔 어디서든 구하기 쉬운 브로콜리나 파프리카를 떨어지지 않게 신경 쓰는 편이다. 이렇게만 있어도 영양과 맛이 풍부한 밥상을 차릴 수 있다. 과일은 제철 맞아 싼 우리 과일을 한두 가지만 산다. 요즘은 귤만 샀다.
새롭고 다양한 식재료를 먹어야 할까?... 슈퍼푸드 유감
렌틸콩, 아마씨, 아보카도와 노니...
언젠가 이른바 슈퍼푸드 대해 다룬 해외 다큐멘터리를 본 후로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갈망이 줄어들었다. 유행에 따라 바뀌는 고가의 '슈퍼푸드'의 영양소가 전통 식재료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이름도 생소한 퀴노아나 햄프씨드 같은 곡물들만큼 보리가 좋고 우리나라에선 1세대 슈퍼푸드로 통할 케일보다 오이와 양배추가 낫다는 얘기였다. 물론 가격까지 고려한 평가다. 오늘도 홈쇼핑에선 만병통치약처럼 포장된 슈퍼푸드를 판다. 노니와 코코넛 열풍도 한차례 지나갔고 사차인치, 카카오닙스가 보인다.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흔해빠진 식재료들을 선택했다.
세상에 없던 영양소를 가졌거나, 영양소를 압도적으로 많이 함유한 식품이 과연 있을까? 앞서 거론한 슈퍼푸드들이 그랬다면 왜 한 차례 유행으로 그치고 마는 걸까. 90년대 슈퍼푸드 열풍의 선구자 격인 클로렐라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 집에도 한동안 식탁 위엔 클로렐라 병이 놓여있었다. 온 식구가 초록색 단추처럼 생긴 걸 한 알씩 먹어야 식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클로렐라를 챙겨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좋다면서 왜? 그만큼 좋다는 식품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언론과 홈쇼핑에서 좋다는 음식을 다 먹기란 불가 그때그때 최신 스타 식품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요즘 엄마의 냉장고엔 브라질리언넛이 가득하다. 한때 디톡스 열풍과 함께 유행했던 밀싹주스 맛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요즘 나는 푸른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 걸로 만족한다.
가공식품은 더 단출하다. 언제부턴가 못 끊을 것 같던 우유도 떨어지게 두는 날이 많아졌고 은근히 여러 종류로 나뉜 햄이나 소시지 등 육가공 식품도 필요할 때 한 가지 사서 두루두루 대체해 쓴다. 김밥을 싸고 남은 김밥용 햄으로 크루아상 샌드위치부터 베이글 샌드위치, 볶음밥, 급기야 까르보나라도 대강 흉내 낼 수 있다. 치즈는 자주 해 먹는 파스타에 갈아 올리기 위해 경성 치즈(블록 치즈)를 주로 사는데 슬라이스 치즈가 필요할 땐 최대한 얇게 썰어 부서진 채로 빵 사이에 끼워 먹는다. 녹으면 맛은 비슷해진다.
소박한 밥상, 나를 사랑하는 방식을 닮았다.
밥상을 차리는 것도 간단해졌다. 밥에 국이나 찌개, 밑반찬을 펼쳐놓고 먹는 한식은 훌륭하지만 내겐 다소 번잡하다. 밥과 반찬을 먹더라도 한 접시에 조금씩 담아서 먹는다. 구성은 주로 메인반찬 하나에 채소류를 조금 곁들이는 식이다. 어떤 요리를 할까 보다 가진 재료 내에서 최대한 균형 있고 맛있게 먹고자 노력한다. 식비와 식재료 쇼핑에 드는 에너지가 줄었고 먹는 행위에 대한 본질이 남았다. 간소한 밥상은 대강 차린 밥상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거둬내고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일이다. 어려운 레시피나 고급 재료는 없지만 나를 대접하는 마음이 밥상에 오른다. 내 안으로 들어가 나를 만드는 음식들, 낭비 없이 잘 다루어야 한다. 식기는 가장 자주 쓰이는 중접시 두 개, 파스타나 카레 볼 한 개.
전엔 드넓은 마트를 빙빙 돌며 매일 달라지는 세일 품목을 노리는 재미가 있었다. 눈도장 찍은 시식코너 직원 덕에 모 냉동만두를 2+1로 득템 한 날은 귀갓길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지만 얼마나 흐뭇했던지. 지금은 부족한 재료를 요리조리 보완해먹는 즐거움이 생겼다. 어떤 즐거움이 더 큰지는 모르겠다.
새해 예산을 짜면서 2주에 한 번씩만 장을 보기로 했다. 살 품목은 위에 적은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 줄어들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사는 재미가 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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