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단식 3개월, 공복으로 되찾은 단순한 즐거움

음식과의 관계를 회복하다.

by 게으른 여행자

(앞선 '공복' 관련 글들부터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lazytraveler03/5)


지난 11월 24일, 나는 연말 폭풍 모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장치로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다. 지키지 못한 날도 많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석 달을 보냈다. 이쯤에서 나의 지난 얘기를 꺼내보려 한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음식과의 일그러진 관계를 청산하고 먹는다는 행위를 단순한 기쁨으로 되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음식에 집착하기 시작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끼니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밥을 먹고 돌아앉아서 또 먹던 혈기 왕성 청소년 시절에도 내 몸엔 군살이 거의 붙지 않았다. 스무 살 때까지의 얘기다. 어릴 때 나는 라면 한 번을 끓여 먹는 일이 드문 먹거리 모범생이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매끼 식사 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우리 집은 평범한 서민 축에 속했지만 엄마는 먹거리에 만큼은 까다로운 전업주부였다. 가족들에게 깨끗하고 좋은 먹거리를 챙겨주려는 의지가 강했고 가족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해 컨트롤도 심한 편이었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는 갑자기 바깥 음식들에 노출되었다. 게다가 당시는 편의점이 늘어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도 파자마 차림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거리에 편의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배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귀가하던 길 헛헛한 위장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냉동 만두나 샌드위치 같은 걸 사서 먹던 기억이 또렷하다. 편의점 가공식품에는 종류를 불문하고 야릇한 향이 베여있었다. 시큼함이라고 하면 맞을까? 샌드위치조차 마요네즈로 버무려진 양상추에서 톡 쏘는 맛이 났다. 몹시 불량한 맛이라고 느꼈지만 불량함이란 원래 매력을 동반한다. 그때부터 내게 음식은 24시간 '아무 때나 먹는 것', 하나의 '오락'이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불어가던 몸이 다시 한번 폭증한 계기는 30대 초반 업무 환경 상 밤낮이 바뀌면서부터였다. 저녁에 출근해 이르면 밤 11시 늦으면 새벽 1시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겐 잠 오지 않는 긴 밤이 남아있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하는 일도 불만족스럽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힘들었다. 삶이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되돌려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불안했다. 불안한 밤을 그럭저럭 보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떠올랐다. 스무 살에 경험했던 그 불량스러운 맛과 즉각적인 쾌감은 10년이 넘도록 잊히지 않고 있었다.


그날도 똑같은 하루였다. "00님, 00 씨~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느 때와 똑같은 일과를 끝내고 동료들에게 수선스럽게 인사를 한 뒤돌아서자마자 애써 올렸던 입꼬리가 내려가면서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장에특별한제가 없었다. 여느 30대 여성들처럼 내게도 불확실한 커리어나 연애처럼, 겪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그날부터 집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와 함께 그때그때 당기는 식품들을 골라 집에 들어갔다. 컵라면, 핫바, 햄버거, 만두... 내 하루의 유일한 휴식이자 시간을 가장 잘 흘려보낼 수 있는 도구였다. 깊은 밤, 음식을 우물거릴 때만큼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있었고, 이런 약한 내 모습을 들킬 염려가 없었다. 날마다 뱃속은 부글거리고 얼굴은 점점 푸석푸석 부어갔지만 또다시 밤이 오길 기다렸다. 한밤중의 불량한 과식은 다음날 식욕과 의욕을 모두 떨어뜨렸다. 오후 서너 시까지 입맛이 없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어쩌면 안 좋은 컨디션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음식은 현실의 혼돈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였다. 무기력하게 늘어져있다 저녁에 출근하면 다시 혼자되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술이나 담배에만 중독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다. 내가 먹는 것들은 모두 높은 탄수화물 비중에 해로운 지방이 더해져 고칼로리를 자랑했고, 계속해서 그 패턴을 요구했다.


저런 식으로 몇 개월이나 살았을까, 아니 몇 년? 이상하게도 저 시기에 대해선 명확한 기억이 없다. 시간이 흘러 생활 패턴이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그때 이후로 밤마다 혼자 먹는 일은 사라졌지만 잦은 다이어트를 겪는 동안 음식에 대한 애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내게 음식은 너무 사랑하지만 멀리해야 할 것, 멀리하는데도 여전히 나를 옭아매는 어떤 것이었다. 어릴 때 순수한 우정으로 큰 기쁨을 나누던 친구와 오해가 쌓여 멀어져 버린 기분이랄까. 운동도 좋고 식욕 억제제도 좋지만 나는 무엇보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음식과 다시 친해지고 싶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다시 잘 지내보고 싶었다. 두려움에 떨며 먹거나 비정상적으로 끊어내거나, 앞에선 못 본척하고 뒤에서 몰래 입에 쑤셔 넣는 등 잘못된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나는 음식을 마음 놓고 먹지도 못하고 장기적으로 적정 을 유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왜 마음 놓고 먹지도 못하는데 살은 살대로 찌지? 너무 억울하잖아?'


내게 간헐적 단식은 음식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두 끼를 스트레스 없이 먹고 나머지 시간에 먹지 않으면서 깨달은 건 16시간 공복이 나은 지 18시간 공복이 나은지 혹은 인슐린 민감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식습관에도 루틴이 필요하다는 것. 그 단순한 일상성이 건강한 식이의 기본이라는 사실이다.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다. 비밀스럽게 탐식하거나 정을 떼려는 듯 멀리하거나 모두 비일상적이며 비정상적이다. 이런 사람들은 먹는 시간과 먹지 않는 시간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루틴 한 식습관을 만들 수 있다.


그동안의 다이어트는 음식량을 줄이거나 운동으로 대사량을 늘리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음식을 자연스럽게 먹기보다 종류를 철저히 제한하고 적은 양을 매끼 나누어 먹게 한다. 이렇다 보니 모든 다이어터들의 소원은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 살 빼는 것이 되었다. 간헐적 단식도 자칫 이런 욕구에 부합하는 다이어트법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다이어트를 위해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는 사람들 중에도 아무거나 먹을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하루 최소 16시간 몸에 음식을 끊은 후 이롭지 않은 음식을 먹는 건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몸에 대한 학대에 가깝다. 오랜 시간 몸을 비운 만큼 잘 먹여줘야 한다. 나와의 약속을 잘 지켰다는 성취감에 따르는 보상심리는 의외로 건전하게 나타났다. 몸에 필요하고 이로운 것에 집중하게 된다. 신경 쓰지 않으면 과다 섭취하기 쉬운 탄수화물 비중에 신경 쓰고 단백질을 챙겨 먹는다거나 탄수화물의 종류를 양질의 것으로 바꾸는 식이다. 그래도 여전히 간헐적 단식의 핵심은 먹는 것의 종류나 칼로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먹는 시간과 먹지 않는 시간을 구분해 일정 시간 동안 음식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긴 공복 동안 건강해진 마음은 이로운 먹거리를 찾는다.


나의 목표는 목표 체중이 될 때까지 혹은 건강을 위해 평생 간헐적 단식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배가 고플 때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소화가 끝나 다시 배가 고파지면 먹는 것. 음식 앞에서 이기지도 지지도 않고 '먹는 그 단순한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루에 두 끼든 네 끼든 8시간을 먹든 10시간을 먹든 중요하지 않다. 하루를 즐겁게 살면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끼니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다. 내게 맞는 체중은 그때 알게 될 것이다. 평균보다 다소 많거나 적게 나가더라도 자연스럽게 먹고사는데 무리가 없다면 그것이 내 적정 체중이다. 자연스럽게 먹게 될 때까지 나는 간헐적 단식을 통해 건강한 식이 루틴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공복 시간을 체크하지 않아도 몸이 요구하는 양을 자연스럽게 먹고 적정 체중을 유지했던 십 대 시절의 나처럼.


몸에 맞지 않는 집단생활과 새벽형 일과로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던 고등학생 시절, 유일하게 강렬한 기쁨으로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진저리를 치며 일어나 세면대에서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며 생각했다. ' 몇 시간만 버티면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실컷 잘 수 있다.' 오전 수업밖에 없었던 토요일마다 나는 엄마가 차려놓은 점심 메뉴를 기대하며 뛰다시피 집에 갔다. 가장 설렜던 메뉴는 채소 듬뿍 카레라이스, 돼지고기 듬뿍 김치찌개, 삼겹살과 파무침, 육개장 찌개 등이었다. 밥 한 공기를 넘게 먹고서 바로 두꺼운 이불을 덮고 달콤한 낮잠에 빠지는 것이 그 시절 유일한 낙이었다. 엄마의 음식은 늘 푸짐했고 과일이나 감자 고구마 같은 간식도 야무졌지만 나는 배고플 때마다 양질의 음식을 잘 먹고 밤엔 잘 잤다.


그때 내 몸무게는 48kg을 넘지 않았다.





참고사항: 간헐적 단식 석 달, 체중 5kg 감소, 평균 일주일에 한 번은 공복시간을 어긴 듯. 어기고 나서 뻔뻔하게 다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빨리 빼고 싶다면 어기지 말고 해 보자.


(아래는 간헐적 단식을 포함해 일상의 비움과 채움에 대해 쓴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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