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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Aug 05. 2019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그녀들에 대하여

서른셋의 분수령

서른셋부터였던 것 같다. 고만고만해 보이던 우리들의 삶이 서로 눈에 띄게 다른 행로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내게도 중고교와 대학을 통틀어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동성 친구가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곁에 남은 친구는 한 명뿐이다. 오래된 친구가 많은 것이 꼭 좋은 것도 아니고, 사회에 나온 이후 나이를 불문하고 친하게 된 지인들을 친구라 부를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친구들이 곁에 거의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 번씩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친구들 중엔 직장생활을 하다 30대 중반을 넘기지 않고 결혼한 친구가 가장 많고 20대에 일찌감치 결혼한 친구들은 다시 전업주부와 워킹맘으로 나뉘었다. 같은 싱글이어도 결혼을 필수로 여기느냐 아니냐에 따라 미혼과 비혼으로 분류됐다. 나는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 쪽이었다

서른셋은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분기점이나 분수령 같은 나이였던 것 같다. 결혼에 비교적 느긋해 보였던 친구들이 가장 많이 결혼한 나이도 서른셋이었다. 소위 ‘적령기’ 결혼을 포기할 수 없었던 친구들은 용케도 서른셋 언저리에서 모두 결혼을 했다. 일찍 결혼한 친구라면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을 것인지 자녀계획의 윤곽이 드러나거나 둘째를 가진 경우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이 서른셋을 기점으로 나는 많은 친구들과 멀어졌다. 결혼 후 일과 가사의 병행으로 바빠진 탓에 연락이 뜸했다가 이후엔 공통 관심사가 너무도 달라져 자연스럽게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런 경우야 앙금이 없으니 여유가 생기거나 감성에 젖은 어느 날 언제든 다시 연락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경우는 서로의 선택이나 입장을 존중하지 못해서 상처를 주고받다가 멀어진 관계다.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던 사이였다. 그러나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결혼 유무에 따라 입장이 서서히 달라지더니 서른셋 즈음엔 그 차이가 확 커지거나 다시는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 없을 것 같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들이지 않아도 유지되던 우정은 더이상 저절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20대에 결혼한 전업 친구는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결혼이 아닌 다른 것에 몰두하는 내게 노산이나 고독사 같은 단어를 슬쩍슬쩍 흘리며 공격했고 명절 연휴에 가족 행사에 참여하는 대신 여행이라도 떠날라치면 철없다 나무랐다. 어쩌면 투정 같기도 한 어처구니없는 타박 앞에서 '네 삶이 지금 별로구나' 헤아리고 넘길 여유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던 나는 그녀를 멀리하는 쪽을 택했다. 내겐 결혼 외에도 중요한 일이 많았고 결혼은 풀기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녀에게도 속속들이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종류의 고민들이 있는 법이니까. 돌아보면 이 관계가 가장 자주 생각난다. 가까웠던 시절이 그리워서라기보다 성숙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관계를 성급하게 끝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유독 친구를 좋아하고 소소한 것까지 함께 나누길 좋아했던 그녀도 답답했을 것이다. 왜 어서 결혼하지 않느냐는 재촉엔 점점 공유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담겨있지 않았을까.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선생님을 흉보면서도 자신만의 꿈을 키워갔던 그 시절이 그리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을 겨를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사정은 제각각 달랐지만 모두 처음 맞이하는 삶의 전환 속에서 우리는 꽤 많이 헤맸던 것 같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삶을 선택한 친구들은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갔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가끔 편을 갈라 서로를 공격했다. 워킹맘과 전업이 나뉘고 심지어 애 하나인 집과 애 둘인 집이 나뉠 때도 있었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을 때 인간은 때때로 타인의 다른 선택을 공격하기도 한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친구들은 모두 각자만의 짐을 지고 그 시절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편하고 가깝던 친구들과 멀어지거나 심하게는 적이 돼버리기도 했다. 굳이 맞설 상대와 연대할 상대를 구분한다면 학창 시절의 친구는 연대의 대상에 가깝다. '친구'라는 자격의 참견이 때로 공격으로 다가올 때도 많지만 포기하기 아쉬운 이유는 모든 다양한 여성의 삶을 한자리로 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디테일을 지우는 건 조심할 일이지만 연대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결혼과 직업, 자식의 유무를 떠나 젊든 젊지 않든 여성이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은 사회에서 서로를 딸도 아내도 엄마도 며느리도 아닌 원래의 존재로 바라보고 각각의 삶을 포용하고 격려할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귀한가. 지금의 나처럼 서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좋지만 달라진 상황을 무릅쓰고 서로를 그저 이름만으로 호명하며 연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관계는 친구끼리 가능하다.       


서른셋이 훌쩍 지난 지금, 결혼하지 않아도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마흔셋에도 그럴 것이다. 어느덧 나와 친구들은 남편이 있는지 없는지 자식이 몇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됐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그깟 편 가르기와 신경전 때문에 친구들과 이렇게 사이가 멀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먼저 연락해보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자기만의 삶의 숙제를 풀지 못 한 사람과의 관계는 여전히 힘들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준으로 사는 삶과 자신의 기준으로 사는 삶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한 번씩 갈등하고 망설인다.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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