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채기 힘들겠지만 나는 보기보다 여러 종류의 운동을 시도해봤다. 내 운동 이력을 아는 한 친구는 내게 ‘운동계의 얼리어답터’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때그때 뜨는가 싶은 운동은 모두 시도해 본 편이다. 피트니스와 수영,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비교적 흔한 운동은 물론이고 동네 상가마다 우후죽순 생겼다 사라지는 다양한 스포츠 클럽에도 꽤나 드나들었다. 둥글게 배열된 운동기구들을 한 바퀴만 돌면 전신이 건강해진다는 30분 순환 운동, 초등학생 때나 타던 트램펄린 위를 방방 뛰는 점핑 다이어트, 껌뻑 껌뻑 현란한 조명 아래서 귀청과 심장이 동시에 터지도록 사이클 페달을 밟는 그룹 스피닝까지. 도저히 운동하기 싫을 땐 재미와 효과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며 벨리댄스와 살사를 배워보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한 가지 운동에 정착하지 못하고 편력을 보이다 인생의 슬럼프에 접어들면서 한동안 운동을 끊고 지냈다. 목욕이 내게 ‘정상적인’ 생활의 주요한 지표라면 운동은 ‘꽤 좋은 상태’ 임을 알려주는 증거다. 무기력에 빠지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몸놀림을 제외하고는 꼼짝하기 싫어진다. 마음은 빗장을 닫고 뇌도 비상사태를 감지하는지 에너지를 아끼라고 지시하는 듯하다. 그러다 슬슬 다시 몸을 쓰고 싶어 진다는 건 에너지가 충전되어 여력이 생겼다는 뜻, 몸과 마음이 다시 마주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가벼운 산책을 시작으로 요즘 다시 내 버라이어티한 운동 생활에 시동이 걸렸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운동을 하루 중 특정 시간과 공간으로 분리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지금 내게 운동이란 밥 먹기 아니, 최소한 책 읽기 만큼은 부담 없는 생활 밀착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엔 내 친언니가 영향을 주었다. 우리 언니는 다이어트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만한 인물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로.
언니는 10대 시절부터 40대에 이른 지금까지 무엇이 본래 모습인지 모를 정도로 몸이 자주 변해왔다.
40kg 대의 다소 앙상한 모습부터 그 두 배에 가까운 몸까지. 언니의 지난한 다이어트 역사를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 언니는 지독한 식이요법을 통해 정상 범위의 체중에 도달했다. 그러나 경험상 식이요법만으로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기에 운동을 꼭 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직장에 다니며 조카도 돌봐야 하는 언니가 선택한 운동은 1분 운동이다. 10분이 아니고 1분. 언니는 조카에게 카메라를 쥐어주며 자세를 촬영할 것을, 내겐 스톱워치로 1분을 재줄 것을 부탁했다. 만화를 보던 조카는 귀찮아하고 나는 비웃는 사이 그 운동이 시작됐다. 아기가 기는 자세로 엎드리나 싶더니 종아리를 뻗고 ‘끙’ 소리와 함께 둔중한 엉덩이와 배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다시 한번 ‘끙’, 시옷자로 솟았던 엉덩이가 내려가며 두꺼운 몸통이 수평을 이뤘다. 곧 팔뚝과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10초도 못 버티겠는걸.’ 그러나 10초는 금방 지났다. 단 10초 만에 조카와 나는 귀찮음과 비웃음에서 응원 모드로 변해 진지하게 책임을 다했다. 언니는 무사히 1분을 채운 뒤 잠시 쉬었다가 한 번 더 1분, 그리고 또 쉬었다가 1분 총 3분을 해냈다. ‘플랭크’라는 운동이었다.
플랭크 자세
효과는 둘째치고 바들바들 떨며 몸의 중앙부에 온힘을 집중하는 그 시간이 좋아 보였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1분의 몰입은 보장된 셈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도 언니를 따라 시작했다. 준비물은 스포츠 매트 한 장. 자세를 잡고 버티는 데 몇 차례의 실패를 거쳐 나도 곧 최초의 1분에 성공했다. 곧 나의 집 한 편엔 오렌지색 운동 매트가 자리 잡았다. TV를 볼 때나 샤워하고 나와서 간단히 마사지를 할 때도 나는 매트 위에 앉는다. 매트 위에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스트레칭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 스트레칭은 시원하다. 서서히 몸이 풀린다. ‘1분만 해볼까?’ 일단 시작만 하면 그만둘지 말지를 갈등하는 사이 운동이 끝난다. 보통은 1분을 성공하면 3분도 10분도 쉽다고들 하던데 나는 진짜 1분씩만 할 때도 많다. 그래도 1분은 꼭 지키려고 한다. 보통은 1분씩 3세트. 그래 봤자 총 3분짜리 운동이지만 생활 속 운동 감각을 느낄 수 있어 좋다.
1분 매트리스 운동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의 주도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걱정이 많던 과거엔 마음과 몸은 별개라고 믿었다. 몸은 마음을 떠안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에 끌려 다니느라 지금 이 순간 만져지고 느껴지는 몸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 마음을 포기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숲의 새소리와, 흙과 나무 냄새, 볼을 스치는 바람은 모두 몸의 감각을 통해 내 안에 스며 마음을 움직였다. 요즘은 오히려 몸이 마음을 압도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기분이 좋아져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졌다. 1분 운동은 몸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시간, 생각만으로 사는 줄 알던 머리형 인간이 몸의 소리를 듣는 시간인 셈이다. 몸의 감각이 살아나면 좋은 점이 많다. 몸은 마음에 비해 보이고 만질 수 있기에 다루기가 수월하다. 인간의 정신력과 의지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아주 작은 투지만을 필요로 하는 1분 운동은 효과적이다.
여유롭거나 여유롭고 싶은 시간, 의미 없는 TV 소리를 흘려들으며 굳은 어깨를 풀어주고 조물조물 팔뚝이며 종아리를 문지르다 보면 운동까지 하고 싶어 질 때도 있지만 스트레칭에서 끝날 때도 많다. 심지어 매트 위에 벌러덩 눕기만 해도 요가의 ‘시체 자세’ 이거니 운동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쓰면 쓸수록 이건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의 기나긴 핑계같이 들리지만 확실히 말하건대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과 꼭 친하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친해지고 싶지만 왠지 거리가 느껴지는 그런 친구가 내겐 운동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소파 대신 매트 위에 눕는다. 혹시 매트가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내일은 조금 더 친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