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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Oct 15. 2019

모닝 루틴, 그거 너무 어려운 거 아닙니까?

아침에 좋아하는 일을 할 것


[아침에 눈뜨자마자 감사 일기를 쓰고 영어 문장을 외운다. 그리고 똑바로 앉아서 10분쯤 명상한다. 이어서 책 세 페이지를 읽은 다음 요가매트에 눕는다. 요가가 끝나면 샤워를 하고 유기농 채소와 복합 탄수화물, 양질의 단백질로 구성된 아침식사를 즐긴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한 존경스러운 직장인의 모닝 루틴이다.  지인은 회식 다음 날에도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한다고 했다. 물론 나는 저렇게 못 한다. 우선 아침형 인간이 못 되는 것이 어쩌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날엔 오후 서너 시부터 골골댄다. 아침형은 고사하고 아침 8시형 인간도 될까 말 까다. 그럼에도 내가 눈 뜬 직후 매일 반복하는 일이 있다면 침실 창을 열고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돈한 후 거실 소파로 나가서 다시 눕는 것이다.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밤새 못 본 뉴스와 SNS를 살피면서 아침식사로 뭘 먹고 싶은지 떠올린다. 김치볶음밥, 파스타, 오믈렛과 감자구이... 간밤의 긴 공복 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 쌀쌀한 계절엔 차를 한 잔 마시면서 한다. 나는 이 시간이 그렇게 좋다. 내게 모닝 루틴이 있다면 이 정도다.

 

모닝 루틴, 나이트 루틴, 주말 루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하는 운동선수들에게만 해당하거나 ‘틀에 박힌’의 뜻으로 쓰이던 단어 ‘루틴’이 요즘 사용 범위를 확장해, 긍정적인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성공을 위한 열 가지 습관’ 같은 자기 계발서의 지침들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던 루틴의 비밀을 나는 최근에 알게 됐는데 바로 글쓰기 루틴을 통해서다.


단행본 마감을 앞두고 요즘 매일 4~5시간 규칙적으로 글을 쓰다 보니 내게도 루틴이 생겼다. 커피나 차를 한 잔 만들어 곁에 둔 다음 오늘 쓸 아이템에 어울리는 음악을 떠올린다. 노트북 충전기를 연결하고 부팅한 다음 유튜브에서 최소 두 시간이 넘는, 광고 없는 영상을 골라 플레이한다. 클래식부터 재즈, 팝까지 다양하게 듣는데 무겁고 단정적인 글이 되지 않도록 가볍고 밝은 음악을 고르려고 한다. 그리고 문서를 열어 깜빡이는 커서를 몇 초간 그냥 본다. 노트북 하단의 시간도 확인한다. 최소 집중 시간은 두 시간. 두 시간 동안은 어떻게든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검열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쓴다. 이 초고는 긴 퇴고 과정을 거치는 동안 원래 모습을 거의 잃을 테지만 어쨌든 이 최초의 주절거림 없이는 글이 완성될 수 없다.      


내가 겪은 루틴은, 시간 관리나 유익한 습관 형성을 위한 방법이라기보다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쓸만한 상태로 세팅하는 일이었다. 나의 루틴은 내게 주는 암시이자 사인이다. 안전한 일상의 감각을 제공하는 차 한 잔과 친근한 음악은 이 막막한 글쓰기 작업을 내 페이스대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다소 무모한 암다. 잠시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이 공백 위에서 차츰 글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제 시작하라는 사인이다. 오늘도 나는 고치고 또 고칠, 그렇다고 좋아진다고 보장할 수 없는 부끄러운 초고밖에 못 쓰겠지만 그래도 쓰는 수밖에 없으니 밀고 나가라는 격려, 만족할만한 글을 쓰지 못해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다독임이다. 그럼에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목소리가 있다. ‘사람들이 과연 내 글을 읽어줄까.’ '나까지 쓸 필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노트북을 덮고 싶은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쓴다.

마감이라는 단순한 목표 아래서 시작했지만 글쓰기 루틴을 반복하는 동안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누구에게 가 닿을지 알 길 없이 쓰는 이 순간을 견디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공을 향한 습관이 가리키는 게 출판과 저자 되기라면 의심과 회의, 실패와 실망 속에 위태롭게 이어간 루틴의 보상은 뜻밖에도 쓰기의 결과가 아닌 그저 쓰는 과정의 정직한 기쁨이었다.


루틴에 관해서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빼놓을 수 없다.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쓰고 오후엔 수영이나 달리기를 한다고 알려졌다. 특히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소설가이자 러너라고 밝힐 만큼 달리기를 몹시 사랑한다. 처음엔 '글쓰기를 위해 자신의 하루를 이렇게 헌신할 수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가 글을 쓰지 않아도 계속 달릴 것임을 알았다. 소설 쓰기라는 목표를 갖고 짜였던 루틴이 목표와 상관없는 절대적 희열로 변해가는 과정을 본 것이다.  


모닝 루틴은 아침형 인간의 유익한 습관이나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라 자기만의 삶의 리듬을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이 하루를 여는 작은 고집, 혹은 대체로 대로 되지 않는 하루를 최대한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간혹 하루키 같은 거장의 루틴은 그 자체가 삶의 미학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루틴의 가장 확실한 효용은 매일 아침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성실히 함으로써 느끼는 ‘기분 좋은 상태’가 아닐까. 앞에 예를 든 난도 높은 모닝 루틴과 단순한 습관에 가까운 나의 느슨한 모닝 루틴 사이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아침에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 이상 한다는 점이다. 습관적으로 하는 일 말고 좋아서 능동적으로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여느 꼬맹이들처럼 아침잠 많고 등교하기 싫어하는 내 조카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애착 인형의 이름을 노래처럼 만들어 부르며 밤 사이 안부 인사를 건넨다. 이 행동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아이도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좋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어떤 하루는 모닝 루틴 같은 걸로 손 쓸 수 없을 만큼 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어서도 조카가 인형과 긴 아침 인사를 나누던 순간의 순수한 즐거움만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모닝 루틴, 그거 별 거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작은 일을 아침에 배치하고 성실히 반복할 것, 그리하여 어찌 될지 모를 하루지만 어쨌거나 기분 좋게  시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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