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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Feb 11. 2021

나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

새해를 맞은 우리들에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난여름 내가 쓴 에세이 <내일은 모르겠고 하루만 열심히 살아봅니다.>가 세상에 나왔을 때 정작 내 하루는 그닥 안녕하지 못했다. 책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고 하루치의 기쁨과 슬픔에 집중하여 온전한 하루를 살자’라고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즈음 나의 첫 일과는 이랬다. 눈 뜨면 이불에서 나오지도 않은 채, 스마트폰으로 각 온라인 서점을 돌며 판매지수와 순위를 살피고 매장 재고를 확인했다. 순위가 오르거나 재고가 빠르게 빠지면 기뻐했고 반대일 땐 실망했다. 그날그날,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그야말로 일희일비를 열심히도 했다.

마음 졸이며 오래 작업해온 책이 드디어 나왔으니 성취감을 즐길 법도 했건만 평소의 규칙적인 일상이 깨져 온전치 못한 하루가 이어지니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소박하지만 조화롭고 규칙적이며, 무엇보다 내 의지대로 꾸려왔던 일상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원고가 내 손에서 떠나는 순간, 결과를 수용하는 일 외에 내가 관여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책이 얼마나 팔리고 어떤 반응을 얻는지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내가 바꾸거나 개입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면 삶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작은 진리이건만 이렇게 자꾸만 잊어버리고 만다.     

새해가 되자 올해도 어김없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집중하자는 격려가 여기저기 서 쏟아진다. 이때 자주 소환되는 단어는 단연 ‘의지력’이다. 의지력은 특히 숫자로 매길 수 있는 성과를 목표할 때 종종 동원된다. 주식 투자를 위한 종잣돈 얼마 모으기부터 체중 5kg 감량, 토익 점수 900 돌파 같은 식이다. 때로는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기처럼 숫자 자체가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성공시키는 사람은 늘 소수다. 물론 나도 매년 실패하는 다수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 같은 다수는 늘 이중고에 시달린다. 목표 미달 자체에서 오는 실망과 나는 역시 틀렸다는 자괴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의지력을 바탕으로 한 이런 격려에는 이제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의지력은 경이롭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아름답고 위대한 많은 것들이 인류의 불굴 의지가 이뤄낸 성과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일 년은 인류의 한계를 전 세계가 목도하고 체험한 시기였다. 첨단의 시대에도 미지의 전염병 앞에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선진국이라 믿었던 나라들에서 들려오는 어처구니없는 무능은 인류의 능력에 회의를 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해결책을 모색하고 만들고, 실패하면 또 만들고 저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까지 희생하는 것 또한 인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류의 역사 자체가 그렇다. 인간이 이런저런 혼란을 겪으며 한계를 자각하고 머리를 맞대어 비로소 극복하는 과정이 역사의 진화가 아닐까.     


전 세계적 재난 속에 우리는 당연하다 여겼던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이 우리 삶의 어엿한 토대였음을 절실히 배우고 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스크 없이 편히 숨 쉴 수 있고, 오늘은 또 어떤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지 궁리하거나 카페에서 동료들과 차 한 잔 마실 때의 즐거움, 아이가 친구들과 마음껏 뛰노는 걸 지켜볼 때나 퇴근길 친구와 나누는 맥주 한 잔 같은 작은 순간들이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었음을 깨닫는다.

더불어, 많은 것을 빼앗긴 후 남은 것을 소중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체육관과 카페를 잃었을 때 언제든 산책할 수 있는 공원과 따뜻한 커피잔에 손을 녹이며 도란도란 얘기 나눌 수 있는 벤치조차 감동스럽다는 걸 알았다. 또한 반드시 물리적으로 모여야 연대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 또한 결핍으로부터 배웠다. 인간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자포자기하거나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다 인간의 한계 앞에 겸허한 자세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나가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일이라면 개인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책의 운명이라는, 손 쓸 수 없는 문제에 매달려 하루를 잃어가기보다 다시 내 작은 의지로 할 수 있는 일,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자 오히려 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한동안 끊어졌던 산책을 규칙적으로 다니고 아침마다 기분이 좋아질 만한 일을 한 가지씩 했다. 출근에 쫓겨 허겁지겁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보다 몸과 마음의 각성을 위한 몇 분의 짧은 스트레칭이나 오늘 일정에 대한 중얼거림 같은 기도만으로도 하루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이렇게 스스로를 보살피는 시간을 통해 나는 계속 글을 써나갈 힘을 얻는다.   

나의 의지력은 한없이 약하지만 요즘 내 하루들은 꽤 튼튼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압도되어 전전긍긍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일을 선택하고 내가 바라는 크고 작은 것들을 솔직히 응시하며 그것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의지력이란 특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나를 아끼고 소중히 대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를 아끼는 길은 특정 목표를 이룬 다음이 아닌 오늘 하루 속에 담겨 있다. 새해, 나를 포기하지 않는 튼튼한 하루를 많이 만드시기를, 그런 날들을 모아 그런 한 해를 이루시기를.


(♤사보 칼럼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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