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앞에 놓인 또 다른 과제
작년부터 참여하고 있는 매일필사.
도서관 리뉴얼로 올해는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운영되지 않고 있지만 필사에 진심이 필사지기님들의 리드로 계속해서 운영되고 있다.
가끔 내가 읽었던 글귀가 올라오면 오랜만에 만난 절친을 만난 것처럼 반가움과 함께 써 내려가고,
절대 혼자라면 접하지 못했을 낯선 글귀들은 낯선 설렘에 좀 더 천천히 써 내려가기도 한다.
출근 전에 글을 쓰고, 안 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필사 인증을 하면서 무언가 작지만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뿌듯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든든함도 있다.
"삶의 의미" "행복" "인생" 키워드의 글들이 유독 많은 시기가 있다.
돌이켜보면 이런 키워드를 생각 안 하며 살았던 주기가 있었나 싶지만 그 시기마다 크기와 무게는 다를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곡선을 따라 걸으며 나는 지금 또 어디인가 싶은 생각이 많았던 요즘.
절박할 땐 '이거 하나만'을 바라다 막상 신기하게 이뤄지면 그 감사함도 잠시, 다시 '이건 부족해'로 바뀌는 이상한 마음 때문에 갈팡질팡, 스스로 자책하기도 하던 때.
아래 필사글을 만났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2020, 청아출판사, p.124-125>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이 글을 필사하면서 한결 홀가분해졌다.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정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다.
내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중인데, 그걸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맞다 틀리다 할 수 있을까.
'이거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가 과제를 수행하는 답일 때가 있고
그 시기가 지나 또 다른 오늘이 오면 또 다른 과제가 앞에 놓인 것이니 다른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어쩌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유연한 정의일 수도.
그래서 오늘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하는데 집중해보려고 한다.
결국,
오늘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