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지 못한 나를 어쩌지
별마당 도서관에 앉아 책을 하루 종일 보면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처음 생긴 게 언제였지... 자주 가보진 못했지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어색해진 것처럼 낯선 핫플이 되어 있었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카메라에 담아 SNS 인증하는 것이 외국인들의 여행 코스인 건지..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차분히 책을 보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아닌 것이 아쉬웠다.
좋아한던 공간이 낯설게 느껴진 오늘,
좋아하는 아이와의 사이에 큰 절벽이 있음을 느낀 사건까지 더해졌다.
버거운 하루다.
1+1 인건가.
허용과 자유, 그 속에서 책임을 가르치며 자신을 지키면서도 피해 주지 않는, 도움이 되는 '괜찮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학교 통지서에 예의 바르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아이라는 선생님들의 코멘트를 볼 때마다 뿌듯함으로 가득한, 내가 엄마로서 잘하고 있다는 성적표를 받는 듯했다.
키가 먼저 훌쩍 크더니 마음의 변화도 급격한 중학생이 된 아들과 봄부터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변화하는 나, 남편,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고 어떤 관계 스탠스를 유지할지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안 아이들이 그 변화를 눈치채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연기했다.
그러나 나의 연기는 대실패.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한다고 해도 온몸에서 새어 나오는 "나 화났음"의 기운을 최고의 감각 수준을 가진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는 엄청난 착각을 했다.
내가 받는 상처, 그로 인한 화남을 눈치채고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아이가 내 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가 그때, 아빠가 안쓰러웠다는 말을 했다.
대충격...
아빠가 잘 못 했지만 그걸 지적질하는 엄마 앞에서 쭈글 한 아빠가 불쌍했고 그런 상황이 싫었다는 말에 아.. 나를 이해해 준 게 아니었구나, 상처를 받지 않게 하려고 한 행동이 결국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던 건가 싶어 혼란스러웠다.
애정결핍인가 걱정할 정도로 붙어있던 아이는 키가 갑자기 크더니 커진 키만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운동하는 시간이 많더니 그냥 나가서 노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에 점점 늦게 오는 구실을 만들며 부딪힌다.
집에선 점점 무뚝뚝해지고 방에만 들어가 폰과 주로 놀고 질문을 귀찮아하고 피한다.
그래, 너의 상태는 그 무섭다는 '사춘기'인거지?!
머리로는 멀어지는 변화를 목격하며 '예상했던 일이니까 받아들이자' 싶지만 마음은 화산이 부글부글 폭발한다.
아닌 척 하지만 연기력이 꽝인 나로서는 불기운이 온몸에서 새어 나오니 악순환일 수밖에.
연락이 안 돼서,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그리고 거짓말인데 끝까지 아니라며 자신을 의심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억울해하며 끝이 나는 대환장 언쟁.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고 우기는 아이에게 차분히 얘기한다고 하지만 "의심" 또는 "들킨" 상황 자체가 싫은 아이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고 그러다보면 목소리가 커진다.
원하는 아름다운 결말이 안 난다는걸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도 끝장을 보려고 또다시 얘기를 꺼낸다.
찜찜함은 해결해야 직정이 풀리는, 아무리 사춘기라도 거짓말하는 건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나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인가?
그도 아님 내가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 규칙을 깨고 야단맞으면서도 다시 또 깨며 엄마가 만든 규칙을 깨게 만들어야겠다는 아이의 의도가 읽혀서인지, 엄마로서 영향력이 떨어졌다는 구겨진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이라는 걸 인정하는 걸 보려고 하는 것인지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또다시 얘기를 꺼낸다.
그러면서 점점 더 멀어진다.
아이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고,
의심하는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나를 대한다.
그렇게 한바탕을 하고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그네에 앉아 끄적거린다.
아이는 끝까지 숨기려고 하고
믿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상처받은 티를 팍팍 낸다.
이럴 땐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전달했으니,
거부하는 건 니 문제라고 넘어가야 하는건가.
엄마에게 더 이상 공유하고 싶지 않고,
자신의 행적을 엄마가 몰랐으면 좋겠고,
난 클 만큼 컸으니 나대로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아이의 마음을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나의 찜찜함과 무너진 자존심은 묻어두고.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어쩌면 사명감을 가장한 집착을 버리고,
그냥 방치하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지혜로운 나였음 이 순간을 잘 헤쳐나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