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할 말 쏟아내기
나는 이과반 출신이다.
요즘은 문과 이과 구분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라떼는 말이지~ 구분을 했었다.
특히 국어에 약했고, 독서에 푹 빠진 적도 없는, 작문이 늘 어려웠던
그런 사람이었다.
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여기에도 "인생 총량의 법칙"이 있는 건가.
일정하진 않아도 책을 미친 듯이 읽고 싶어 도서관에서 대량 대여를 해오거나
서점에서 플렉스 하며 마치 수집가처럼 책 구매에 빠지는 시기가 있다.
그러다 글쓰기 영역까지 넘어왔다.
읽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은 돌덩어리를 꺼내고 싶어서,
돌덩어리가 쌓이다 마음이 무너져내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위기감이 찾아왔을 때
브런치를 두드렸다.
내 돌덩어리 좀 꺼내는 거 도와달라고.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취미 없던, 오히려 싫어했던 글쓰기를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하다니.
점점 "인생 총량의 법칙"을 맹신하게 될 판이다.
나도 나에게 놀라는 일이 이어졌다.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늘 하는 나였지만
필사를 하게 될 줄은
책을 찾아 읽을 줄은
글쓰기를 할 줄은
몰랐다.
사촌동생이 추천한 북클럽까지 신청해서 책 읽는 환경을 만들었다.
사실 북클럽을 만든 주인공에게 끌려서이기도 했다.
통계학자, 유튜버, 작가.
출퇴근 길에 유튜브를 보며 놀라움, 부러움, 존경 등의 복합 미묘한 감정을 느꼈고
이 사람의 스토리가 궁금해져 책을 찾아봤었다.
나도 어쩌다 보니 가방끈이 길어졌고,
연속성 없이 계속해서 길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제목을 보고 '나랑 비슷하네~'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비슷한 접점들이 있어 동질감, 공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용기의 크기가 다름을 알았다.
기대한 동질감은 아니었지만
상황을 이겨내는 용기를 보고
나도 내 나름의 용기를 내어보기로.
나에게는 두서없이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그 어려울 것 같았던 표현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
죽을 것만 같아서, 내가 소멸할 것만 같아서
살아보고자 선택한 '용기'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당신의 내일 날씨는
흐린 뒤 맑음일 거예요.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 전선영 지음>
흐린 날 뒤엔 맑음이 올 것이고,
맑음 뒤에 또 흐리고 비가 오겠지만
또다시 맑음이 올 것임을 아니까.
아무튼,
오늘도 살아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