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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케빈 Jan 23. 2018

남자의 몽정은
더러운 것이다.

첫 몽정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시선

자신의 첫 몽정 시기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남성들이 꽤 된다. 흡사 바지에 찔끔 지린 소변처럼 보여서 일 수도 있고, 그 양이 적어 축축해진 속옷을 눈치 못 챘었을 수 있다. 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몽정 즈음에서야 그 강렬히도 야했던 꿈 끝에 온 오묘한 기운이 몽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단꿈을 이어 꾸고 싶다는 잠깐의 생각이 스치기도 전에, 비릿한 향이 준호 코를 찔렀다. 준호 나이 13살. 겨우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준호에게는 어른으로 가는 어떠한 기우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또래 애들이 으레 코 밑에 한두 가닥 얇게 피어오르던 솜털마저 없었다. 아직 어른이 될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한 준호에게 '비밀'이란 것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어느 누가 그렇게 만든지는 준호도 준호 아빠도 모르지만, 준호는 그저 이건 막연하게 숨겨야 하는 것이며, 야한 것이며,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쉬쉬하며, 그 더러움을 이야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왜 숨겨야 하는 것인지, 왜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어느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맞겠다. 행여 엄마에게 들킬까 화장실로 부리나케 들어가 팬티에 비누를 바르는 일에 정신이 팔렸다. 누구에게 들킬새라 손빨래질을 몇 번 하더니, 이내 빨래통으로 직행했다. 가쁜 한숨을 몰아쉬며,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아직은 어린 애교쟁이 아들로 돌아왔다. 한 살 많은 준호의 누나, 준희의 초경이 시작된 것도 이맘때였다.


누구의 생일도 아닌 어느 날에, 준호네 집에는 파티가 열렸다. 배탈이 난 것인지, 하루종일 배를 움켜잡고 있던 준희를 향한 케이크라고 했다. 부랴부랴 퇴근한 준호 아빠의 손에는 꽃다발도 들려 있었다. 준희는 머쓱해하며 초를 불었고, 준호는 축하의 영문도 묻지 못한 채 박수로 거들었다. 그 케이크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2년이나 지난, 중학교 2학년 성교육 시간이었다. 그럼 이 성교육 시간으로 자신의 첫 몽정 또한 초경만큼 존엄한 것이며, 축하받아야 한다는 것을 준호는 눈치챘을까? 그럼, 혹여나 자신의 초경이 소중한 것이란 걸 미리 교육 받았던 준희는 동생의 몽정 또한 소중한 것이라고 배웠을까? 준호는 32살이 된 지금까지도 몽정이란 건 '창피했고, 냄새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준호가 몽정과 월경을 명확하게 이해할 즈음인 고1에 '몽정기'라는 영화가 큰 인기를 얻었다. '섹스코미디'라는 어마무시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파격적인 15세 관람가로 극장에 나왔다. 87년생 준호 세대에 몽정이 갖는 의미에 대한 기념비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그린 첫 몽정은 꽤나 우스꽝스러웠으니 말이다.

왜 어른들은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많은 어른 중에 어떤 누구도, 준호에게 몽정이란 것은 아이를 만들수 있게 된 몸이며, 축하받아야 하는 것이며, 건강한 것이며, 어른이 되는 과정으로써 자신의 몸을 더 소중히 여겨야 되는 시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몽정은 성욕의 분출이며, 짐승이 되어 가고, 여자를 밝히기 시작하며, 성에 눈을 뜨는 시기라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곁눈질로 느낀 게 전부였다. 예전 문학 작품에서 첫 몽정을 야릇하고 신기했던 경험에 빗대는 구절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준호가 느낀 감정이 아니다. 어른이 되고, 과거를 그리워할 때쯤에서야 그때의 감정을 미화해서 적은 것이다. 1990년에 겪은 준호의 첫 몽정은 더러웠고, 숨기고 싶었으며, 창피한 일이었다. 사회는 처음으로 어른이 된 그 중요한 사건조차 퇴폐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준호와 각별히 친하게 지내던 삼촌의 아들인 조카가 준호에게 고민 상담을 요청했다. 자신이 '몽정'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섭다고 했다. 아빠에게 먼저 말해보라는 준호의 대답에 그 조카의 반문은 놀라웠다. '엄마, 아빠한테 혼나지 않을까요?' 20년 전 자신의 첫 몽정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다. 아직 어린 준호의 조카는 어른이 되었다는 성(姓)의 무게보다, 부모를 실망시키는 일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준호는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 조카의 떨리던 고민을 작은 엄마와 삼촌에게 전했다. 작은 엄마는 삼촌의 몫이라며 떠밀며, '너무 자주 하지는 말라고 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겼고, 삼촌은 머쓱해하며 남자가 그런 것을 가지고 야단이냐고 했다. 여전히 몽정은 퇴폐적이며, 쉬쉬하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축하하지 않는 혼자만의 첫 번째 성인식이다. 준호는 미래의 아들에게 케이크를 선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미 많은 젊은 부부들이 이를 실천하고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준호는 진짜 진심을 다해 더 크게 축하할 거라고 다짐했다. 미래 아들의 첫 번째 성인식이 창피하고 감추고 싶은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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