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미학

by 라임색 선글라스

낭만浪漫, 물결이 부서진다는 뜻을 모아 일본의 나츠메 소세키가 영어 로망스(Romance)를 음차하여 만든 단어이다. 어찌 보면 단순히 소리를 따서 만든 단어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낭만이라는 단어를 잘 나타내는 한자도 없어 보인다. 덧없이 부서지는 바다의 저 물결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낭만이다.

이런 낭만의 어원은 Romace이다. 영문으로 검색하며 로망스어와도 혼동될 수 있는 이 단어는 둘 다 로마라는 거대한 존재로부터 흘러나왔다. 사실 로마라는 존재가 유럽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안될 수가 있겠는가. 1400년이 넘는 시기를 버티며, 대제국을 건설한 국가, 지중해라고 불리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사이에 놓인 거대한 바다를 ‘호수’라는 수식어로 축소시킬 만큼, 모든 길은 결국 로마로 통한다는 관용구를 동아시아에서도 통하게 하는, 서구권의 많은 나라들이 독수리 문양에 대한 동경을 만들며, 제 2, 3의 로마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만든, 그런 동경의 대상 그 자체가 로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로맨스라는 단어는 당연히 로마라는 이름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비잔틴과 십자군 시기의 로마가 껍데기뿐인 국가라고 할지라도 그 이름이 주는 위용은 어디에 사라졌겠는가. 신성하지도, 로마도, 제국도 아닌 신성 로마제국이 있을 만큼 로마라는 이름을 사고자 하는 이들이 넘치던 시대에 가장 ‘낭만’적인 이름은 로마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존에 없던 선망과 동경의 감정의 표현이 새로운 단어의 형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동경의 단어, 로맨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동아시아에서의 ‘낭만’과 서구의 ‘로망스’는 약간 다르다. 기본적으로 서구의 ‘로망스’는 과거에 대한 선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시대에 대한 선망 말이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미지를 끌고 들어와서 선망이라는 감정을 표현했던 것처럼 로마의 이름이 지닌, 유럽이라고 하는 서로 찢어져있는 각각의 문화권들을 묶어낼 수 있는 거대한 문화적인 구심점에 대한 동경이 낭만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로맨스 소설들은 캐릭터들의 동경이 드러난다.


특히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부르는 성공에 대한 선망이 대표적이다. 최근 로맨스 웹툰에서는 능력 있는 여주인공이 이끌어나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천한 신분의 여주인공이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을 만나 신분 상승을 이루는 스토리가 흥행했었다. 현대물의 경우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퓨전 사극이긴 하지만 <궁>에서도 왕족인 남자 주인공과 평민인 여자 주인공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으며,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음악계 금수저인 남자 주인공과 흙수저 여자 주인공 간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9791190153478.jpg 제목이 스토리의 큰 틀을 보여준다

물론 최근에는 완전히 평민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신데렐라 스토리’에서도 성장을 기다리는 것을 사람들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고구마 대신 시원한 사이다를 기다리고 있는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자 주인공들은 점점 낮은 신분으로 회귀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재혼’이라는 키워드를 끌고 들어오기도 한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고 있는 ‘재혼 황후’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웹소설 분야에 비하면 변화가 늦은 웹툰 진영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은 동경의 산물인 로망스에서도 변화가 어느 정도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로맨스는 동경, 그중에서도 신분 상승에 대한 동경이 드러난다. 우선 재혼이라는 새로운 메타의 등장에도 여전히 남녀 캐릭터들이 지닌 각각의 출발선은 변하지 않는다. 북부 대공으로 통칭되는 남자 주인공은 사교계나 작중 초반에는 신망이 두텁지 않은 캐릭터로 묘사되지만 항산 북부 대공들은 전쟁, 방위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인물들이며 황태자들이나 황제들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치의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황녀, 혹은 황태자의 약혼자로 시작하는 여주인공들의 경우에 여전히 낮은 위치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녀, 평민과 같은 정말 올라가야 하는 사다리가 길게 뻗어있는 과거의 작품들과 달리 귀족이라는 작위는 가지고 있으며-심지어 황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 새롭게 귀족 사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권력자라고 보기는 힘든 사람들이다. 오히려 권력이라는 한 번 나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영역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새로운 로망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여전히 로망스는 우상, 그것도 찬란한 우상에 대한 동경이 서려있다. 마치 서구의 국가들이 내가 독수리 문양을 달면 로마의 정신적 후계자를 칭할 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신성로마제국, 러시아의 제3로마제국, 독일 나치의 제 3제국 선언과 같이 수많은 국가들이 로마라는 이름의 향수, 아우라를 두르고 싶어 하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찬란한 존재에 대한 선망과 ‘아이돌’이 되기 위한 욕구의 발현이 바로 ‘낭만’의 어원 ‘로망스’라고 할 수 있다.



쓸모없는 것, 낭만


길게 돌아왔다. 그러면 물결이 부서지는 낭만은 로망스와 무엇이 다른가? 우선 낭만의 정의는 쓸모없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효율과 상승욕구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바로 낭만이다. 그렇기에 낭만을 쫓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로마의 아우라를 허리에 둘러서 새로운 로마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낭만을 쫓는 사람들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없거나, 그 목적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치가 아닌 경우가 많다.


‘고시엔’ 일본의 특이한 문화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고교야구 대회가 대표적인 낭만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이 야구를 잘 안다면 고등학생이 한 경기에 150개가 넘는 공을 던진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 건지 알 것이다. 아직 18세에 멈춰있는 고등학생 투수는 마치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공을 던진다. 지금 던지고 있는 공이 생에 던질 수 있는 마지막 공인 것처럼 투수는 공을 던진다. 심지어는 고시엔이 끝나고 수술대에 오르는 투수도 가끔 있을 정도다. 정말로 비상식적이다. 고시엔에서 한 팀을 승리로 이끌어서 높은 곳으로 이끌 수 있는 투수가 프로 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한두 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160개의 공을 뿌리는 투수는 미래의 수익을 확보한다는 합리성을 버려버린다. 한여름 한신 고시엔 야구장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명승부의 한 장면, 그 장면에 본인과 본인의 고등학교가 이름을 새길 수 있다면, 오늘 승리를 해서 내일 다음 경기를 할 수 있다면, 다시는 오지 않는 고3의 여름이 하루가 늘어난다면, 그 투수는 1개의 공이라도 더 던지는 것이다. ‘낭만적’이게도 말이다.

C2iSkImUkAEmO0Q.jpg:large 11:10 9회에도 선발이 던진다면 KBO에서는 감독은 이미 3대가 죽었을 것이다

이는 야구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로망스’의 선망이 서려있는 유럽의 축구에서도 낭만은 중요시된다. ‘원 클럽맨’이란 단어는 비합리성의 상징이다. 이 비합리성은 팀의 성적에 좌우하지 않는다. 선수와 팀 양쪽이 모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해야지만 가능한 것이다. 당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인 델 피에로가 2부 리그로 강등된 유벤투스와 함께하면서 남긴 ‘신사는 숙녀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 3부 리그로 떨어진 파르마를 1부로 이끌었던 루카렐리, 리버풀의 암흑기를 버티면서 리버풀이라는 이름을 이어온 제라드와 같은 수많은 선수들이 명예와 부라는 합리적인 선택을 버려가면서까지 팀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그렇기에 ‘낭만’은 타인이 볼 때 쓸모없는 것에 집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시엔에서 하나의 공을 더 던진다고 해서 성공하는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3부 리그로 간 팀에 남아있는다고 해서 그 팀이 다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낭만을 쫓는 사람들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았다. 근본적인 본인의 욕구, 어떻게 보면 스스로 선망되는 이상향이 되기 위한 욕구에서부터 시작된 쓸모없는 것일 수 있다.


왜 너는 달리는가.



이 낭만의 감정은 스포츠에서 너무나 중요한 파이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런 낭만의 비효율성에 대한 선망은 스포츠 창작물에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2020년대를 강타한 서브컬처 문화의 새로운 아이콘 ‘우마무스메’에서도 이런 경향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우마무스메의 모든 시리즈가 성공했냐는 질문에는 누구나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우마무스메의 시리즈는 흥행적, 비평적 측면에서 여러 평가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 평가는 두 개의 그룹으로 크게 갈렸다.

4XDe0mUx1QK3awTZRnix_wayD8D5YGgG6R7VTedKo7d-A8fuDuCRgBt5eSagJt_IaDcG1HvAF5zbyBXgggRWBg.webp 베이퍼웨어에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나는 개인적으로 TVA 시리즈로 나왔던 ‘우마무스메 Pretty Derby’시리즈의 1, 3기와 여타 작품들에 대한 평가가 나뉜다고 생각한다.(외전으로 발매된 숏 애니메이션 <우마욘>의 경우는 제외하겠다.) 언급한 두 개의 작품과 그 외의 작품들은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줬으며 단순히 비평적 측면이 아닌 판매량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TVA 1기의 경우 BD가 약 18,000장이 최고 판매량이며, 3기의 경우 약 23,000장으로 2020년대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성공적인 판매량을 보여주지만 극장판이 첫 주만에 27,000장의 판매량을 보여주고, 2기가 초동 판매 11만장, 누적 판매에서 에반게리온에 이은 역대 2위에 오르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여준 것에 비하면 ‘실패’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충분하다. 2020년대를 호령하고 있는 IP를 지니고 흥행의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것은 마치 칸코레의 IP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실패했을 때를 보았던 기억과 같다.

왜 이런 흥행의 차이를 보이는가. 이는 앞서서 지속적으로 말했던 ‘낭만’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우마무스메의 경우 외관적인 스토리만을 보았을 때는 전형적인 캐릭터의 외관적인 매력에 의존하는 ‘미소녀 동물원’적인 IP로 보일 수 있다. 이전 세대 서브컬처 작품들인 ‘인피니티 스트라토스(IS)’, ‘데이트 어 라이브’가 그러했고 같은 수집형 게임으로 볼 수 있는 ‘칸코레’나 ‘소녀전선’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우마무스메에서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캐릭터의 외관이 보여주는 매력이 아닌, 캐릭터가 지닌 ‘낭만적’ 서사였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명의 캐릭터가 바로 ‘트윈 터보’와 ‘티엠 오페라오’이다 우선 우마무스메 TVA 2기의 숨겨진 주인공으로 불리는 트윈터보의 경우 지나치게 클리셰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 있다. 튀는 외관과 어린아이 같은 철없는 성격, 주인공에 대해서 나 홀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액스트라와 조연 사이에 있는 애매한 캐릭터, 스포츠를 소재로 하지만 스포츠보다는 캐릭터성에 기대는 작품들에서 항상 뻔하게 등장하는 하나의 개그 캐릭터에 가까워 보인다. 밈이 될 수는 있지만 큰 인기를 유지하기에는 거리가 먼 그런 캐릭터 말이다. 그러나 트윈 터보는 뻔하게 소모되지 않았다. 특히 10화에서 나온 1993년 G3등급의 경주 올커머를 원본으로 한 스토리는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 변신을 이끌었다.


레이스에서 무작정 도망치는 트윈 터보의 레이스는 굉장히 어린아이의 고집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터보가 지닌 유아적인 성격과 맞물려서 스포츠라는 이겨야 하는 세상에서 단순히 본인이 하고 싶은 행동만을 고집하다가 계속해서 실패하는 아직은 어리숙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0화의 레이스는 아니었다. 부상에 좌절한, 현실에 순응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 ‘토카이 테이오’를 향해서 던진 트윈 터보의 레이스는 불합리의 덩어리와 같았다. 모두가 이기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던, 심지어 그 ‘토카이 테이오’를 이긴 ‘라이스 샤워가 함께 달리는 레이스에서 전략적인 선택이 아닌 여전히 가장 먼저, 모두로부터 도망치며, 페이스 조절은 생각지도 않는 불합리한 방식, 그리고 그 불합리한 선택이 가져온 승리라는 결과는 우마무스메 2기가 성공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 “최강은 아니지만 최고의 도주마”라는 이명을 경마팬들로부터 지닌 트윈터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모습이었다.


201179_202007_3029.jpg 트윈 터보만이 4번째 코너에 들어섰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Y96jzkDhy4


티엠 오페라오(이후 오페라오로 통칭) 역시 마찬가지다. 오페라오의 경우 초기 일러스트의 공개 이후 ‘광대’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분홍색 기반의 색 조합과 우스꽝스러운 대사, 인게임에서만 캐릭터를 접한 팬들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였다. 캐릭터송 역시 전파계 스타일의 음악으로 제작되었으며, 굿즈의 제작 역시 거의 진행되지 않았을 정도로 초기에 비인기 캐릭터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오페라오의 인기는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는 원본 말의 스토리와 이후 창작물에서 보인 캐릭터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 메인 스트림이라고 볼 수 없는 목장에서 길러져, 경력이 적은 기수가 등에 탔던 오페라오가 보여준 1년 8전 8승의 대기록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심지어 8번째 승리에서 보여준, 눈과 코를 다쳐 힘든 상황에서 말들에 둘러싸여 있던 오페라오가 끝내 승리를 따내는 모습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8번의 경주를 모두 나간다는 선택 역시 너무나 비합리적이다. 경마에서 말은 자산이다. 현대에 올수록 마주 들은 본인의 말을 이길 수 있는 경주에만 내보내며, 기록보다는 장기적인 수익에 집중한다. 마치 고시엔을 버리고 프로 드래프트에 집중하는 투수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페라오는 8번의 경주를 나가며 160개의 공을 던진 고시엔 투수가 되었다. 대기록을 세우기 위한 혹사는 기록을 보는 입장에서 비합리적이고 낭만적이다.

dm_6cSjrvTqIjb1wJHtXYzSlwnW9JwQfwOKAXp4anuiRopWIinP35htcVzfU28uJBYezpjcFTbhoS5uccItJQA.webp 이게 패왕?

이는 창작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단순히 잘 달리는 거을 넘어 본인의 라이벌들을 독려하며 오페라오 스스로의 성장 동력으로 다른 캐릭터들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그런 모습을 오페라오는 보여준다. 라이벌을 추락시키고, 본인의 순위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극히 비효율적인 모습이다.


캐릭터로만 보면 이런 비효율성이 우마무스메 안에서 각광받았다. 그러면 다시 흥행의 이유로 돌아가서는 이런 불합리한 선택이 만들어낸 낭만을 가장 잘 보여준 요소가 무엇이었을까? 바로 “왜 너는 달리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1기의 경우에는 본능이라는 키워드에 조금 더 집중한다. 모든 우마무스메 프랜차이즈의 1기에서 보여주는 우마무스메의 설화에서 나오는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소녀들”이라는 키워드에서부터 나온 달리는 것에 대한 본능, 그리고 원초적인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마저도 3기에서는 캐릭터의 다원화로 캐릭터 소개에서 그치게 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반면 흥행한 시리즈들의 경우에는 이 달리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주어진다. 왜 우리는 달려야 하는가? 그리고 달려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이 끊임없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 달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달리는 것 만이 해답이기 때문이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단순히 결론만 이야기하게 되면 앞의 두 실패작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단순히 달리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성공작들은 저마다 효율을 벗어난 달리기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세 번의 골절 이후 다시 달리면 다시는 달리기라는 것을 할 수 없을 수 있다던 TVA 2기의 테이오, 주변의 기대감이 주는 부담감과 찬란한 경쟁자들이 주는 절망을 딛고 일어난 Web 애니메이션 RTTT(Road to the Top)의 나리타 탑 로드, 극장판에서 나온 다시는 뛸 수 없다고 포기했지만 다시 뛰려 하는 아그네스 타키온과 계속된 실패와 재능의 벽을 뚫어낸 정글 포켓과 같이 능률적이고 단순히 행복한 것이 아닌, 굳이 힘들고 역경이 널려있는 길을 선택하는 그 선택들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며 낭만을 자극하고 있다. 왜 그들은 달리는 가에 대한 대답으로 달릴 수 있으니깐, 달리는 것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나를 살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우리는 비효율적인 낭만을 느끼고 있다.



회색의 괴물은 달리고 싶어 하는가?


길고 긴 글의 종착은 이번에 나올 새로운 애니메이션에 대한 프리뷰를 위해서였다. 회색 털의 말은 못 달린다는 말을 부수며 등장한, 지방의 말은 중앙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일본 경마에서 손에 꼽는 성공사례, ‘아이돌 호스’라는 별칭과 함께 경마계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쓴 말, ‘오구리 캡’이 주인공으로 있는 애니메이션 ‘우마무스메 신데렐라 그레이’가 2025년 4월 6일부터 방영되기 때문이다.

QQb9fZHfjvlehS0rkSCZ4Z8G3UYC8Z3qKrnRBWrRUXLOQSLg-KxizKr-j5cPKQIpKpJ8XS3tYGpojsMyZy9sFg.webp 회색의 괴물이 달려온다(밥을 축내러 온다)

사실 원작 자체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 권당 50만 부에 가까운 흥행을 보여주는 만화 원작은 너무나도 정도의 스포츠 만화의 진행을 보여준다. 고뇌와 성장, 그 가운데 보이는 비합리적인 선택과 그 과정에서 보이는 성장과 성공은 너무나도 스포츠 팬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고, 그 스포츠 팬들이 주류인 우마무스메 팬층에 어필되기에도 충분했다.


그러나 미디어 믹스화에서 이를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축약들과 정적인 이미지에서 동적인 이미지로 옮겨지는 과정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는 염려다. 야구팬들에게 “공굴무일”(공을 굴리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라는 대사와 함께 컬트적인 인기를 인기를 끌었던 <타마요미>가 대차게 흥행 참패를 한 케이스만 봐도 명확하다. 애니메이션화는 항상 양날의 검과도 같다.


그럼에도 나는 오구리 캡은 키타산 블랙처럼 실패한 3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닌, 토카이 테이오나 나리타 탑 로드, 정글 포켓처럼 성공적으로 달리고 싶어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캐릭터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오구리 캡의 동상을 보기 위해 나고야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하는 카사마츠까지 갔던 나의 흑심으로부터 촉발된 감정이지만, 낭만을 찾아 헤매는 하나의 스포츠 광팬으로서의 감정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기다릴 수밖에 없다. 미지의 영역에서 오구리 캡은 현실로 점점 달려오고 있기에, 어찌할 수가 없다. 하나의 질문만을 지니고 나는 매주 일요일 모니터 앞에 앉아있을 것이다. “회색의 괴물, 너는 왜 달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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