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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색 선글라스 Jun 28. 2023

불쾌함이 만들어내는 쾌감

공간이 주는 불쾌함은 우리에게 쾌감으로 다가온다

  게임 장르 가운데 흔히 ‘쯔꾸르 게임’으로 칭하는 장르가 존재한다. 2023년 기준으로 바라보면 평면 도트에 RPG메이커라는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들은 전혀 인기를 끌 이유가 없다. 기술의 시대에 그 누가 이런 저해상도의 조악한 게임을 하려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악한 이미지로 구성된 게임들은 컬트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게임이 제공하는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저해상도의 이미지로 만들어낸 게임은 고유의 분위기를 지닌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공포의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정비례의 아름다운 고해상도의 이미지가 아닌 픽셀로 이뤄진 저해상도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찢어지는 듯한 저해상도의 사운드는 불쾌감과 함께 공포를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을지로의 전시공간 pie(파이)에서 진행되는 cybertrashcan과 jelriggeom의 전시 <Sleepy Sleepy Transceiver>는 저해상도의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공간감을 훌륭하게 사용했다. 을지로의 인쇄소들이 위치한 건물 4층에 위치한 파이가 지닌 작은 공간은 기괴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운드와 작품으로 가득 채워졌다. 특히 사운드의 역할이 매우 컸는데 wakaran girl이 제작한 사운드는 전시장 밖과 안을 분리된 세계처럼 으껴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페인트 냄새로 생각되는 날카로운 화학약품의 냄새가 함께 공간을 채워서 마치 ‘쯔꾸르’ 공포게임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간의 구성이 훌륭했던 것과 함께 작가의 작품 선정 역시 매우 적합했다. 작가가 제작한 작품 가운데 대다수는 서브컬쳐적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함께 악마신앙적 모티브가 함께 사용된다. 미소녀의 얼굴을 조각한 부조는 산양의 뿔 형상의 틀 안에 들어가있으며 또 다른 미소녀의 부조는 회색 머리카락으로 이어져있으며 소녀의 형상을 한 팔이 여럿 달린 인형은 주술 인형을 연상케 한다.


  미소녀와 악마신앙적인 요소가 섞인 이미지 외에도 직접적으로 공포적 이미지를 드러내는 작품 역시 공간의 분위기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다. 호러 만화의 대가 이토 준지의 그림이 연생되는 평면작업과 함께 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의 흉상이 대표적이다. 특히 흉상이 매우 인상깊었다. 전시 공간에 위치한 머리를 조각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조각’ 보다도 ‘제물’에 가까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품이었다. 이는 전시장 전반에서 풍기는 호러의 분위기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보인다.


  이처럼 파이에서 진행된 <Sleepy Sleepy Transceiver> 잘 계획된 불쾌함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불쾌감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쯔꾸르 게임’을 할 때 느끼는 불쾌함으로 부터 느껴지는 쾌감과 같은 기분을 전시를 통해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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