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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호 Jul 07. 2016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맨 처음부터 천한 길이 어디 있으랴마는

세상의 관심에서 사라진 채

오직 더러운 곳을 닦을 때만 사용되는

걸레의 숙명은 더러움에 있다

그래서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아무리 깨끗이 빤다고 해도

끓는 물에 소독한다고 해도

양질의 햇볕을 받았다고 해도

걸레가 걸레의 굴레를 벗어난 적이 있는가

고집스럽게 오직 한 길로

고도로 수련된 그 길로

더러움을 온몸으로 감싸 안아

검은 피를 쏟아내고는

다시 세상을 껴안는 걸레를

누가 함부로 더럽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귀한 물건일수록 빛나기만 원할 뿐

세상은 스스로 더러워지는 것들에 의해

깨끗해진다는 것을





장마가 슬그머니 물러나자 낯을 가리는 여름 해가 구름에 몸을 숨긴 채 슬쩍슬쩍 곁눈질로 눈치를 보는 오후. 그동안 밀렸던 빨래도 하고 걸레도 삶았다. 걸레를 빨랫줄에 걸자 해지고 구멍 난 틈으로 투명한 햇살이 들어왔다. 마치 구도자의 옷처럼 그동안의 고단함과 숭고함이 가슴에 전해졌다. 더 이상 걸레가 더럽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제일 어둡고 냄새나는 곳에서 자신을 희생해 더럽고 탁한 것들을 말없이 지워냈던 걸레의 삶이 수행자의 숭고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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