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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호 Jul 11. 2016

프러포즈

프러포즈

     

     

  

내 가진 것 없어

그대에게 줄 건 없지만

삶의 긴 여정에서

그대에게 외로움이 다가올 때마다

말없이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일 수는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지만 

그것으로 외롭지 않도록

당신 곁에 항상 내가 있음을 알게 하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은 잃어가겠지만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할 필요가 없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날을 기대합니다

     

그대 서운해할지 모르지만

사랑이란 말은 아끼겠습니다

그대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이름만으로 사랑이

가볍게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당신이 그 말을 잊고 살 때쯤

바람이 고운 날을 택해

사랑이라 말하렵니다

그때 당신이 나무라신다면

당신 몰래 적어둔

부끄러운 사랑 한 조각 꺼내

서운한 당신의 마음을 달래렵니다

     

언젠가 다가올 삶의 위기 앞에서

그대와의 거리가 멀어져 보일 때도

밤하늘 견우와 직녀의 별들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하렵니다

나이가 들어 속상해하면

지는 꽃이 아름다운 이유를 찾아

당신에게 알려주고

이제 늙었다 생각되면

아름다운 노을을 찾아

혹시나 잊었을지도 모를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곱게 늙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그대

이 모든 것을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약속 이전에

믿음으로

먼 훗날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

여전히 부족한 사람으로 남으렵니다





결혼을 앞둔 후배와 며칠 전 통화를 했다. 착하기만 해서 항상 걱정됐는데 이제는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한다.

저마다 사람에겐 고유의 향기가 있지만 이 녀석은 항상 소소함까지도 남을 배려하는 순하고 포근한 냄새가 난다. 녀석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해진다. 녀석의 그릇이 나보다 깨끗하고 큰 까닭이다.

잘 살아가겠지만 인생선배로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기성품 같은 사랑을 동경하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상에 충실하고 오랜시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기다림으로 만들어 가는 사랑의 가치를 느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녀석의 아버지와 형님 동생으로 지내고 있고, 녀석 하고도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으니 이참에 호적을 정리해야 하는 슬픔을 맛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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