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기 위한 일과 삶의 균형점 찾기
저는 대학교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했는데요. 졸업 후 몇 년 지나서 학과 동기들과 대학 은사님을 모신 사은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은사님은 경영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을 지내기도 했는데요. 사실 저는 대학 시절에 교수님의 경영학원론과 경영수학, 통계학 과목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경영학원론은 원서로 된 교재가 나의 빈약한 영어 실력과 시너지를 발휘하여 낮은 점수로 자리 잡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잘했던 수학에서는 ‘경영’이란 글자가 앞에 붙으니 전혀 다른 과목이 되고, 통계학도 약해진 수학 실력으로 B와 C 학점을 오갔습니다. 그럼에도 대학 졸업 후에 뵙는 교수님은 친근한 은사이기도 하고, 사회에 나간 졸업생에게 AS를 해줘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짧은 강연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때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적자생존’이란 말입니다.
여기서 ‘적자생존’ 위대한 생물학자 다윈의 진화론에 나오는 ‘진화를 통해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는다’라는 의미가 아닌,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당시 회사 생활을 하던 저에게는 그 이야기가 크게 와닿았습니다. 직장인에게 회의나 거래처 면담에서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같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도 기억에 의존해서 회의 내용을 돌아보면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기억하곤 합니다. 어떨 때는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 나눈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회의 시 참석자로서 내가 맡은 역할에 따라 기억해야 할 것은 서기가 아니라면 회의 내용 전체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억에만 의존하면 회의나 면담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혹은 잘못된 정보로 이해하거나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의에서는 누군가가 서기(기록을 담당하는)를 맡고, 회의가 끝난 후 회의록을 정리해서 보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대일로 만나는 거래처 면담을 할 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또한 전체 회의록을 누군가 작성해 준다고 해도, 회의 시 내게 주어진 세부 업무에 관한 것은 제대로 기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회의나 중요한 면담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갑자기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억, 정확하게 말하면 단기 기억은 휘발성이 강합니다. 기억하는 그 순간에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거나 혹은 편향되거나 잘못된 기억으로 저장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기억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메모하는 습관입니다. 수첩이나 다이어리를 가지고 다니며 적어두거나, 포스트잇에 적거나, 스마트폰 메모 기능을 활용하거나, 녹음기를 써서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적는다는’ 행위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습관을 지녀야 할까요?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라는 책(미즈키 아키코 지음, 중앙북스. 2013년 출간, 2020년 개정 출간)이 있습니다. 비행기 일등석 담당 스튜어디스가 발견한 3%의 성공 습관이란 부제의 책인데요. 성공한 사람들은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저자 미즈키 아키코
출판 중앙북스
출간 2020.11.30.
저의 메모 습관을 돌아보면, 메모를 잘하는 편이 아닙니다. 회사 시절 초기에는 회의 후 다이어리나 수첩에 적은 메모도 빈약했지만, 다시 보면서 ‘내가 이 메모를 왜 적었지?’라고 생각하며 회의에서 맥락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거래처와 이야기 나눌 때도 메모를 안 하는 때가 많았는데, 저녁에 사무실로 돌아와서야 그날의 업무 일지를 쓸 때면 잘 생각나지 않는 때가 많았습니다.
회사에서 연차가 쌓이고, 많은 회의와 미팅을 하다 보니 회의 내용을 기억하는 요령도 생기고, 메모하는 습관도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회의에서는 회의 진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많은 내용을 다이어리에 적으려 했고, 회의가 끝나고 나면 바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거래처와의 면담 현장에서는 잘 적지 않지만(대화 시 거래처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핵심만 간단하게 적었다) 그날그날 거래처 업무 일지에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제가 속한 영업 부문에서는 매일 영업 일지를 써서 보고해야 하는데, 가능한 그날의 일과를 잘 정리해서 쓰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나만의 거래처 관리 카드를 따로 만들어서 거래처와 협의한 사항이나 특이 사항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시작했습니다.
메모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회사에서 지급한 다이어리에 적기 시작했지만, 저에게 잘 맞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같은 팀원 중에 전자수첩을 갖고 다니며 일정 및 메모를 관리하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전자수첩으로 업무를 하는 모습이 있어 보이기에 나도 전자수첩을 사서 일정 관리와 메모를 시작했지만, 습관화가 잘 안 돼서 ‘가방 속에서 잠만 자는 전자수첩’이 됐습니다.
그러다 회사에서의 연차가 쌓이고 주로 노트북에서 메모나 일정을 관리하던 중에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어플이 비로소 나에게 ‘적는 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모든 일정과 메모를 클라우드 기능이 있는 네이버 달력과 메모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달력은 네이버에 로그인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일정을 등록하고 알람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모든 일정을 네이버 달력에 등록한 것처럼, 지금도 내 사업에 관련된 모든 일정을 포함하여 개인 일정도 네이버 달력에 저장하여, 사전 알림을 기본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수십 개 일정이 있으니, 조금만 방심하면 놓치는 일이 생기는 데 알림 기능을 통해 놓치지 않는 것도 있지만, 평소에도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해야 할 일정을 살피다 보면 업무를 놓치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네이버 달력 사용 예
그리고 저에게 네이버 메모도 아주 중요한 어플입니다. 평소에 생각나는 것을 스마트폰 메모로 남기고 이를 수시로 다시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클라우드 기반 메모는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네이버 메모도 있고, 유료 앱인 에버노트(evernote)도 있습니다. 일정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에버노트를 많이 쓰고 있는데, 저는 고급 기능까지는 필요 없고, 간단한 기능과 클라우드 기능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네이버 메모, 네이버 달력을 주로 사용하고, 가끔 카카오톡 내게 쓰기를 사용합니다. 네이버 메모는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비롯한 문장을 기록하기도 하고, 펜으로 그려서 저장하거나, 사진, URL 등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뉴스나, 블로그, 유튜브 등을 보다가 기사나 영상을 기록할 때면 주로 카카오톡의 ‘나에게 보내기’ 기능을 주로 쓰기도 하며, 더 간단하게는 화면 캡처로 남기기도 합니다. 특히 저는 화면 캡처 기능을 많이 쓰는데요, 스마트폰에서도, 노트북에서도 화면 캡처 기능을 세밀하게 많이 쓰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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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메모 사용 예
이처럼 적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만, 조금 더 확장해서 ‘적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적는다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 하는 행위가 됩니다. 노트나 수첩의 한편에 적는 행위를 하지만, 제때 이를 확인하고, 점검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적는다는 것은 결국 기억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관한 문제가 됩니다. 즉, 회의나 면담을 통해 이야기 나눈 ‘단기 기억’을 나의 업무에 관리하기 위해 ‘장기 기억’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완벽한 공부법> (고영성, 신영준 저. 로크미디어. 2017년) 제3장 ‘기억’ 편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요. 기억은 주의력, 작업 기억(혹은 단기 기억), 장기 기억, 효과적인 기억 방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억을 잘한다는 것은 일뿐만이 아니라 생활, 관계에서도 잘할 방법입니다. 업무 지시를 잘 기억하고 따르는 사람. 다른 사람들의 생일을 잘 챙기는 사람.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를 꼭 담아두었다가 이야기하는 사람은 당연히 사랑받는 동료이자 친구가 되지 않을까요?
<완벽한 공부법> ‘기억’ 편에서 특히 저에게 와닿았던 이야기는 주의력(집중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의가 산만하다는 것에도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상황이 다르듯이 이를 어떻게 향상할 수 있는가도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에도 가사, 특히 좋은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멀티 태스킹을 잘한다는 허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의력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소음을 제거하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기보다, 전환을 빨리할 방법을 고민해 봅니다. 작업 기억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꼭 한 가지 일을 마치고 다른 일을 하는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조금씩 다른 주의력을 갖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뇌가 가진 특성이기도 하니까요. 제가 평소에 여러 책을 나누어 읽는 습관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차분하게 읽어야 할 책, 가볍게 재미로 읽는 책, 정보를 저장하는 책 등.
적자생존이라는 말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가고 있습니다.
저처럼 꼭 클라우드 메모와 일정을 관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수첩이나 다이어리도 충분히 나에게 적정한 메모를 관리할 방법입니다. 내게 어떤 것이 유용할지는 각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메모를 어떻게 정리할지는 꼭 고민해야 합니다.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꾸듯이 내가 적은 메모가 어떻게 나의 지식과 정보로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회사 시절에 만났던 한 대리점 대표의 메모 방식은 지급도 저에게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벌써 20년이 지난 일인데요. 그 대표는 손님이 방문해서 타이어를 교체하면 일주일 뒤, 한 달 뒤 꼭 문자로 이상 유무를 문의했다고 합니다. 교체한 타이어가 이상은 없는지(실제로 새 타이어로 교체한 후에는 완벽한 밸런스 작업을 했어도, 새 타이어가 휠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밸런스가 틀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주일, 한 달 뒤에 꼭 문의 문자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문자 보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 관한 관심과 문자 속에 있는 친절함이 전달되어 다시 방문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손님이 다른 손님을 추천해 주면, 그 추천한 손님이 방문하면 꼭 작은 선물이라도 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서비스를 위해 대리점 대표는 신규 손님의 타이어 교체 후에 다이어리의 오늘 날짜에 메모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뒤, 한 달 뒤의 날짜에 문자 보내야 할 일로 기록한 것입니다. 추천으로 온 신규 고객이 있으면 추가로 추천 고객 차량번호를 메모로 적었다가, 대리점에 들어오는 차량번호를 통해 추천 고객을 관리했습니다. 20년 전에도 대리점에 컴퓨터가 있었지만, 그 대표의 고객관리 방식은 다이어리란 아날로그 방식임에도 지금의 스마트폰 어플에 못지않은 방식이었고, 당시에는 독보적인 고객관리 방법이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핸드폰 혹은 다양한 가게 관리 어플이 이를 대신할 수 있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는 내가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적자생존. 적으세요, 적은 것을 잘 정리하세요. 그리고 적고, 정리한 것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者生存 :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주의력, 작업기억, 장기기억, 효과적인 기억 방법을 생각하자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뇌 속 해마의 분류작업처럼 나는 어떤 방식으로 메모를 업무나 일에 효과적으로 반영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