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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할 수 있는 일 vs 내가 적응해야 하는 일

일 잘하기 위한 일과 삶의 균형점 찾기

by 이철재

세 번째 이야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적응해야 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통제 가능 영역과 통제 불능 영역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회사 시절에 매년 9~10월이면 사업계획 수립을 시작했습니다. 가정에서는 매년 혹은 매월 수입과 지출에 있어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가정에서 수입과 지출 계획을 세우진 않아도 어느 정도 수입 대비 지출을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회사는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매년 1년 사업계획과 장기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익과 비용을 관리하고, 현금 흐름을 관리할 수 있어야 회사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있던 영업 부문에서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면 먼저 회사 기획 부문에서 사업계획에 필요한 기본적인 가정 혹은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원재료 구매나 판매에 있어 수입과 수출이 있는 회사라면 환율 추정치를 정합니다. 환율 추정치를 회사에서 자율적으로 정하지는 않고, 한국은행이나 경제연구소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단체에서 공시한 연간 환율 추정치를 기준으로 합니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수출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만, 재료 수입에서 생산원가에 영향을 미치고, 판매가와 영업이익에 영향을 주기 때입니다. 생산 부문에서는 설비 운영 계획에 따른 생산 CAPA(생산 가능 수량) 계획을 수립하고, 신규 설비 계획이 있다면, 그에 따른 생산 시점과 수량을 제시해야 하고 이에 맞추어 영업에서 판매 계획 작성 시 참고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인건비 상승(최저 임금 인상, 필요 인력 수급에 따라)을 반영하고, 연도별 기본 성장 가이드를 제공받습니다. 얼마의 수량과 매출을 목표로 할지, 회사 전체 영업이익을 얼마나 달성해야 할지 등 기본적인 가이드를 받게 됩니다. 회사 경영진의 의지와 시장 전망 추정에 따라 회사 성장을 공격적으로 할지 보수적으로 할지에 따라 판매 계획도 수립해야 합니다.


가이드 제공 후 영업 사업계획을 수립합니다. 가이드에 따라 생산 계획된 생산 부문의 CAPA를 받아서 그에 맞는 판매 매출액과 수량을 계획합니다. 세부 사업계획으로 유통 채널과 제품 종류에 따라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합니다. 많은 회사에서 ERP 시스템을 통해 사업계획을 수립하는데, ERP 시스템이란 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으로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마다 원가, 판매가, 영업이익 등을 유통 채널별 실시간 데이터로 산출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면 어떤 제품을 얼마나 판매할지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다시 지역별, 거래처별로 배분하여 수립하게 됩니다. 단순히 수량과 금액 합계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얻어야 할 영업이익까지 맞추려면, 재료 가격까지 반영한 고수익 제품의 비율을 얼마나 할지 거래처는 신규로 얼마나 발굴할지, 기존 거래처에 얼마나 판매할지 전략적인 판단과 세부적인 수치 계획을 작성해야 합니다.


이처럼 사업계획 수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통제 가능 영역)’과 ‘내가 적응해야 하는 일(통제 불능 영역)’은 어떻게 다루는지를 구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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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기획 부문에서 가이드로 받은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적응해야 하는 일(통제 불능 영역)’입니다. 환율 예측을 내가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겠죠. 생산 설비 일정도 영업 부문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생산 부문이라면 설비의 입고 시점과 생산 가능 시점을 조정할 수 있겠지만, 영업 부문에서는 이를 바꿀 수 없습니다(현실에서는 부문 간 회의를 통해 일정을 조율할 수 있지만 영업 부문에 독자적으로 바꾸는 건 어렵습니다). 생산 부문에서도 어느 정도는 일정을 조정할 수 있지만, 기획 부문에서 제공하는 자금 계획과 설비 공사 일정에 따라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또한 생산 설비가 완료되어도 생산 시 바로 정상 제품이 나오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험 운전을 통해 생산 품질이 안정되는 시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영업 부문에서는 이처럼 주어진 가이드 속에서 어떤 제품을 얼마나 팔아야 할지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현재 있는 대리점이 얼마나 판매할 수 있을지 추정하고, 신규 대리점을 통해 얼마나 판매할 수 있을지 추정해야 합니다. 또한 영업이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품에 따라 고수익 제품을 얼마나 팔아야 할지도 계획해야 합니다. 대리점은 회사가 원하는 대로만 판매할 수는 없습니다. 성장 가능한 시장도 있고, 유지만 해야 하는 시장도 있고,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장도 있습니다. 시장 점유율(M/S)에 따라 성장시킬 수 있는 시장의 한계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시장에 경쟁자가 많고,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낮다면 성장할 가능성도 높고, 한편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경쟁자가 적은(2~3개소) 과점 시장에서는 시장 전체가 성장하지 않으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회사가 늘어나는 만큼 경쟁사 점유율이 떨어질 텐데, 경쟁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라면 경쟁사와 같이 성장할 수는 있겠죠. 이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내가 선택하는 전략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통제할 수 있는)’의 영역이 됩니다. 그래서 회사의 시장분석에 따라 전략 선택이 중요합니다.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율 때문에 많이 고민할 필요는 없겠죠. 내가 할 수 있는 전략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잘할 수 있는 전략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업계획 말고도 야외 기념행사를 계획할 때는 어떨까요? 비가 오거나 태풍이 오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날씨를 고려해서 연간 날씨 예측(기존 날씨를 학습하거나, 기상청 예보 확인)을 통해 맑을 가능성이 높은 날을 선택하거나, 날씨에 상관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실내에서 진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꼭 야외에서 행사해야 할 경우라면, 비가 올 확률이 낮은 날을 기준으로 준비하지만, B 안으로 비 올 때를 대비한 천막 설치 계획을 수립하거나, C 안으로 참가자에게 나누어 줄 우산이나 우비를 준비하고, 비가 와도 행사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준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는 업무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함께 존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는 ‘역량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기업 환경 변화나 시황,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 법률이나 규제 등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업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의 역량을 키워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늘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업무에 필요한 엑셀 역량을 키우거나,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키우는 것은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통제 영역에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핵심입니다. 업무 역량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여도, 내 전반적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저는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종류를 늘리고, 전문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합니다.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내 업무를 체계화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업무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업무를 배우곤 했습니다.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지금은 세무신고를 직접 하면서, 틈틈이 세무를 배우고, 공공 입찰이나 납품에 관해서도 배우고, 북 큐레이션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란 업무나 삶의 환경에 관한 것이죠. 날씨도 그렇고, 법률이나 규제의 문제, 만나는 상사나 동료 직원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해당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먼저 내가 통제하려 하지 말고, 적응해야 합니다. 야외 행사를 기획할 때는 날씨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대응할 수는 있습니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한 B 안이나 C 안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법률, 규제, 시황 같은 것에서는 인사이트를 통해 변화를 살피고, 그 변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나랑 잘 맞지 않는다고 상사나 동료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상사나 동료와는 서로 적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라도 장기적으로는 바꾸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규제나 법률의 문제는 민원 제기를 하거나 정치권에서 개정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합니다. 무조건 환경에 적응만 하면 불합리함이 고착되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일 모두가 명확하게 나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과 통제할 수 있는 역량 요인의 경계에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데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통제할 수 있는데 통제할 수 없는 일처럼 보이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동료나 협업 관계에 있는 사람과 업무를 할 때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타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직급이나 갑을 관계로 윽박지르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통제가 안 된다고 포기하거나 순응만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날씨는 통제할 수 없지만 날씨에 따라 대응 안을 만드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위해 역량을 키우는 데 노력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특히 장기적인 환경 변화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적응해야 할 일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단지 구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단기적으로 할 일, 장기적으로 할 일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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