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피는 자리

by 민유

제주 사라봉은 내가 운동 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적당한 높이에, 올라가면 시원하게 트인 제주를 한눈에 바라보며 숨고르기 딱 좋다. 무엇보다 영주 10경 중 하나인 사봉낙조가 멋있어 가까운 곳에 제주 풍경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사라봉뿐만 아니라 별도봉으로 가는 코스도 있는데 난 이 코스를 좋아한다. 이 길로 걸으면 바로 동백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동백꽃이 참 좋았다. 빨간 꽃이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 싶다. 개인적으로 빨간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꽃’ 하면 빨간색이 떠오르는 편견이 나도 모르게 생겨 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백꽃은 참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추운 겨울에 핀 동백꽃을 볼 때면 이 겨울에 힘겹게 핀 꽃 한 송이가 가엽기도 하고, 또 다른 면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을 아름답게 밝혀주는 동백꽃을 보며 나도 동백꽃처럼 겨울을 이겨내고 아름답게 피고 싶었다. 겨울은 참 힘든 고비의 순간들이 많이 오는 계절이다. 마음이 차가운 온기에 서늘해져 굳건히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나에게 동백꽃은 희망이었다. 빨갛게 핀 꽃이 마음에 스며들어 물들여주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에 동백나무가 있었다. 대추나무, 무궁화나무도 있었는데 유일하게 동백나무에 꽃이 필 때면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우리 집에 동백나무가 있다는 게 왠지 뿌듯했다. 그 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동백꽃이 한 곳에 자리 잡았다. 언제부터인가 동백꽃과 관련된 관광지, 드라마, 상품들이 나오면서 쉽게 동백꽃을 보고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있다. 겨울이 되면 동백을 보러 가는 것처럼 봄꽃을 보기 전 우리 마음을 조금씩 녹여주는 꽃인 거 같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인 ‘필 때도 동백처럼 질 때도 동백처럼’에서

필 때도 질 때도 아름답고 고운 동백꽃처럼 한결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도 동백꽃처럼 사람들 가슴속에 아름답게 피었으면 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이미지로, 좋은 향기로 남게 할 수 있다면 살아있는 동안 ‘내가 잘 살았구나’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남고 싶습니다.”

이시형 박사님의 ‘위로’라는 책에 나오는 말인데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나의 페이지 속에서도 누군가의 페이지 속에서도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까.


동백꽃은 내 가슴속에서만 피는 꽃이 아닐 것이다. 제주에서 4월이 오면 사람들 가슴 속 한 곳에 동백꽃이 피어난다. 슬픔을 같이 나누듯 동백꽃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준다.

슬픔은 꽃잎 따라 지고 희망은 붉게 다시 피어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