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동문시장은 항상 상인과 손님들이 어우러진 곳이며 사람들이 붐비고 활기가 넘친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장을 보러 자주 왔었던 동문시장이 언제부터인가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하고 좁은 시장 길을 빠져나가는 것이 힘들어졌다. 하지만 나에게 시장은 에너지를 얻는 곳이며, 박물관이기도 하고, 소통의 장소, 정(情)을 그려내는 곳이다.
동문시장은 즐거움과 행복감을 충족시키는 곳인가 반면 나에게 기다림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젠 볼 수 없는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난 단 둘이 만나는 경우는 없었다. 집으로 찾아뵙거나 명절이나 제사 때 보는 게 전부이다. 그런 할아버지와 처음으로 단 둘이 만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동문시장 삼거리에서 만나자고 말이다. 할아버지께서 먼저 전화 온 것도 처음이지만 만나자고 한 것도 처음이었다. 만나자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여 난 까닭을 묻지 않고 그냥 나갔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보자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동안 용돈이라고 제대로 준 적이 없어 나에게 주고 싶어 불렀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돈을 모으신지 잘 알기에 받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드셔도 할아버지께서는 계속해서 일을 했던 걸 잘 알아 나는 한사코 거절을 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단호하셨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람한테 준다는데 뭐가 문제냐며 말이다. 이 때부터였던 거 같다. 할아버지께서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동문시장의 신호등 앞에 설 때면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할아버지께서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왔을 지 난 아직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냥 나도 신호가 바뀔 때까지 그 자리에서 서서 기다려본다. 인생의 마지막 누군가 만나고 기다려야 한다면 그 마음은 어떨까. 상상이 되지 않지만 할아버지의 그 날의 모습은 생생히 기억한다. 내가 바쁠까봐 얼른 용건만 간단히 하고 가던 할아버지의 뒷모습. 잡고 싶지만 잡지 못했던 할아버지를 난 기억한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기억하고 싶어도 점점 기억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그리움이 먹먹해진다.
어렸을 때 엄마와 항상 가던 시장 안에 분식집이 이제는 줄 서서 먹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 먹기가 힘들다. 나의 추억이 있는 저 분식집은 이제 바로 먹을 수가 없는 곳이구나, 생각이 드니 언젠가 부산 여행을 했을 때 국밥 하나 먹겠다고 처음 줄 서서 기다려본 적이 있었다. 맛집이라고 찾은 집이라 이왕 줄 섰으니 어떻게 해서든 먹고 가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꿋꿋이 기다렸다. 드디어 국밥을 영접하고 먹는 순간, 미각이 살아나기도 전에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이 맛집이든 아니든 기다리면 어느 곳이든 맛있게 먹겠구나. 그곳이 맛집이 되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 국밥집의 기억은 나에게 맛이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국밥집도 내가 가던 분식집도 그 때의 맛을 보려면 기다려야 한다.
누군가 보고 싶을 때면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람이 오지 않는다 해도 그 사람의 기억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추억은 이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 하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