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어 꽃잎들이 흩날릴 때면 동화 속의 한 사람으로 들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를 맞는 거 같아 설레기도 하고 추운 겨울이 지났구나 싶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벚꽃을 볼 때면 봄이 왔다는 걸 알기도 하고 무엇보다 각 종 꽃의 이름을 붙인 축제들이 기다려진다. 매년 봄이 되면 언제, 어디서 축제를 하는지 알아본다. 그저 꽃구경 하나에 날짜까지 찾아보고 기다리는 걸 보면 한심할 수도 있지만 나를 봄으로 데려가는 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축제라는 말 자체가 활기를 넣어주는 거 같다. 사람들이 붐비고 맛있는 냄새와 시끌벅적한 소리에 따라 가보면 인형 따 보겠다고 풍선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며 웃기도 한다. 기타소리, 아이의 울음소리, 사진 셔터 소리 등 여러 소리들이 만개한 축제 속에서 정작 벚꽃을 제대로 보는 건 5분도 채 안 되는 거 같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꽃이 그리 중요하겠는가. 이 꽃 하나로 사람들이 즐기고 웃고 있으니 꽃이란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어디서든 쉽게 벚꽃을 볼 수 있겠지만 벚꽃이 아름다운 나만의 장소를 우연히 찾았다. 제주성지라는 곳인데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나를 유혹하듯 바람에 날린 벚꽃들을 마중 나온다. 가로수 길처럼 벚꽃이 줄지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벚나무를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매번 벚꽃을 보러 가는 곳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도 이렇게 예쁜 벚나무가 있는지 이 길을 그렇게 걸어도 몰랐었다. 우연히 찾은 이 벚나무에 매료되어 가까이 보고 싶어 따라 들어가다 보니 향현사라는 곳이 나왔다. 벚꽃 잎을 따라, 벚나무를 따라 들어온 이곳은 새로운 곳이었다. 이제까지 이 길을 걸으면서 한 번도 올라와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고, 잠시 앉아 벚꽃을 감상을 하기에 좋은 뜻밖의 장소를 찾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쉬다보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거 같다. 나만의 독서 장소가 되고, 여름에 걷다 잠시 앉아 바람에 땀을 식혀줄 그런 휴식의 공간이 된 것이다.
저녁에 제주성지를 따라 걸으면 돌담이 너무 예뻐 걸을 때마다 잠시 멈추게 된다. 처음에는 여기가 뭐하는 곳이었을까 싶었는데 버스정류장에 ‘제주성지’라고 써져있는 것을 보고 이름을 알았다. 그냥 지나칠 것 같은 비석들도 찬찬히 살펴보며 몰랐었던 이곳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르게 보면 특별하다는 것을 벚나무 아래 앉아 생각해본다. 소중한 것은 늘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놓치게 되는 것은 어리석음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여유’를 주지 않아서 인 거 같다. 그 동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러면서 이곳만 벗어나면 다 괜찮아지고 좋을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굳이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였다는 걸 알았다. 나름 휴식을 주고 여행을 가고 나만의 시간을 줬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나는 나를 위해 시간을 잘 썼는지 묻는다면 난 아마 대답을 못할 것이다. 남들 보기에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나도 나를 잘 모르고 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난 나를 볼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눈이 쌓이거나 벚꽃이 길에 쌓여가는 것이 예전에는 어떻게 치워야 할 지 쓸데없는 걱정에 그 예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면 요즘 벚꽃이 쌓여있는 길을 걸을 때면 내가 봄을 걷고 있구나 싶다. 그 계절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지금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