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동네에 빨래 너는 풍경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진 거 같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빨래방도 많이 생기고 좋은 건조기가 있으니 젖은 빨래를 탁탁 털어 너는 모습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가끔 걷다가 옥상에 빨래를 넌 집을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빨래를 항상 밖에다 널었는데 빨래를 털었을 때 시원한 소리, 그리고 햇볕에 바짝 마른 빨래를 걷어 개는 그 촉감까지 떠오르게 된다. 그 때는 그 과정까지 귀찮았지만 지금은 빨래를 널고 개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특히 빨래할 때 그 향이 너무 좋다. 세제 향, 내가 고른 섬유유연제 향, 그리고 나만의 향이 옷에 남아있다.
가끔 난 나의 기억을 눈으로 본 것보다 향으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거 같다. 생각하지도 못한 오래 전 일까지 떠오르며 그 때의 나를 잠시 만나게 된다. 아무리 생각을 하려고 해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기억까지 떠오른다. 이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연히 도서관 화장실을 사용하고 손세정제를 짜는데 그 향기를 맡자마자 어릴 때 썼던 향기 나는 크레파스가 떠올랐다. 그 향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빠가 당시에 손에 묻지 않는 크레파스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난 크레파스의 그 향이 좋아 싫다고 했다. 결국 그 크레파스가 나에게 마지막 크레파스가 되었다. 더 이상 크레파스를 쓸 나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향기도 그렇다.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한 번에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사람의 향은 진하게 남는다. 물론 화장품이나 향수, 샴푸 향도 있지만 그 사람만의 고유의 향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 스쳐 지나가면 그 사람, 만났던 장소와 시간이 생각난다. 비슷한 향을 우연히 맡게 되면 그 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생각이 난다.
사려니 숲길을 가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향이 떠오른다. 예전에 숲길을 혼자 걸은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던 때라 충분히 숲길을 천천히 거닐면서 있는 힘껏 좋은 공기를 마셔댔다. 좀 더 걷고 싶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야만 했다. 비는 점점 더 굵어지고 우비를 챙겨오지 않았던 터라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 때 누군가 내 뒤에서 부르는 것이다. 한 가족의 아빠인 분이 나에게 우산을 건네주었다.
“저희는 우비가 있으니 이거 쓰고 가세요.”
이미 젖어 있어서 괜찮았지만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먼저 입구에 도착한 나는 차에서 우산을 꺼내 그 가족들을 기다려 감사하다고 하며 우산을 돌려주었다.
가끔 사려니 숲길 앞을 지날 때 그 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산을 쓰고 가는 동안 뒤에서 오는 그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고민하던 내가 생각이 난다.
사려니 숲길에 높이 솟은 삼나무의 향기만큼이나 따뜻한 향이 함께 타고 들어온다. 잊지 못할 그날의 기억을 진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