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첫인상은 3초 안에 판단된다고 하던가. 3초의 시간이면 상대에 대한 평가가 무의식중에 남아 있는 거 같다. 나 또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 말투에서 전혀 상대의 대한 정보 없이 내 맘대로 해석하고 평가를 해버리곤 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내 멋대로 그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편견을 받다보니 내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식사를 하고 나온 일용직 노동자들이 골프 치러 가자는 대화를 듣다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차림새와 골프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순간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 골프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나의 마음속에 이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법륜 스님의 ‘지금 이대로 좋다’를 읽어보면 ‘인도에서 만난 여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스님께서 인도에 성지순례를 갔을 때 어떤 인도 여인이 스님의 옷을 잡아당기자 1루피를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지 않고 다시 옷을 잡아당기며 품에 안고 있는 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아기가 배고프다는 것을 알아들은 스님은 여자를 따라 조그마한 가게에 들어가니 분유통을 가리키는 것이다. 얼마냐고 물어보자 60루피라는 소리에 놀라 가게에서 나왔다. 인도 갈 때는 인도 사람에게 1루피 이상 주지 말라고 교육을 받고 온 터라 60루피는 큰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뿌리치고 온 것에 마음이 걸린 스님은 60루피가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 알아보니 2.400원이었던 걸 깨닫고 자괴감이 들었다. 배고픈 아이에게 먹이려고 2.400원짜리 분유 한 통을 사려고 한 것인데 그걸 외면했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갚아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었을 때 책방에 들어온 한 소녀가 생각이 났다. 검은 책가방을 메고, 삼선 슬리퍼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소녀의 얼굴은 그늘이 지어있었다. 어두운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들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화장실을 쓸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소녀의 행색만 보고 안 그래도 손님이 없어 심란한데 책 사러 온 사람이 아니라서 실망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소녀는 나에게 인터넷을 쓸 수 있냐고 물었다. 가게에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아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잠시 뒤 가게 밖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던 나에게 그 소녀는 다시 다가와 물었다. 근처에 청소년 쉼터가 어딘지 아냐고 물었다. 청소년 쉼터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난 소녀에게 청소년 쉼터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혹시 복지회관을 잘 못 알고 온 줄 알고 근처 복지 회관을 알려주었지만 청소년 쉼터로 가야한다며 소녀는 난감한 얼굴로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가게로 돌아온 나는 책상 위에 있는 핸드폰을 보고 아차 싶었다. 소녀는 청소년 쉼터에 가기 위해 길을 검색하려고 나에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냐고 물어봤던 거라는 걸 깨닫고 핸드폰으로 찾아주면 되는 걸 왜 무조건 안 된다, 모른다고만 했는지 너무 생각이 없이 말한 내가 부끄러웠다. 부랴부랴 검색했더니 근처에 청소년 쉼터가 있다는 걸 알고, 밖으로 나가 소녀를 찾아봤지만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왜 소녀의 겉모습만 보고 모든 걸 판단했을까. 어린 아이에게 경계하고 무심했던 내가 창피했다. 소녀가 나가고 나서 그 소녀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봤다. 어두운 얼굴이지만 말투는 깍듯했고, 나에게 허리 굽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나갈 정도로 예의바른 소녀였다. 어두운 소녀의 얼굴과 다른 정중한 태도와 말이 분명 내 귀와 눈으로 보았는데도 난 그걸 보지 않고 그저 내가 처한 상황의 분노와 소녀의 모습으로 판단에 가려진 진짜 소녀의 모습을 보지 못한 내가 한심하고, 정말 미안했다. 나 또한 나의 모습으로만 판단하고 나를 얕보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기에 절대 사람의 첫인상으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했는데 나도 그 사람과 다를 게 없는 철없는 어른이었다.
영화 ‘늑대소년’ 촬영지로 유명한 물영아리 오름을 처음 갔을 때 다른 오름과 달리 탁 트인 곳이 아닌 숲 속으로 들어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처음에 그 계단을 보고 입이 벌어졌지만 일단 올라가 보자 마음먹고 오르기 시작하는데 중간 쯤 의자에 앉아 고민을 했었다. ‘그냥 내려갈까?’ ‘아니야, 끝까지 가보자.’ 계속 된 갈등을 하고 있던 찰나에 저 높은 곳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이다. 자꾸 나에게 올라오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오르기 시작했다. 빛을 따라 도착했을 때 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제주도가 한 눈에 보이는 정상이 아닌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은 멋진 습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이 좋은 이유는 조용히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고요함 속에 나를 짓눌렸던 아픔과 괴로움을 천천히 씻겨 내려가게 만들었다. 고된 오름길에 포기 했던 나를 끝까지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아직 그 끝에 희망의 빛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숨이 차오를 정도로 힘겨울지 모르지만 작은 빛이 아직 가까이 있다는 걸 잊지 말기를. 그리고 끝까지 가보기도 전에 섣불리 판단하지 말기를.
도착할 때면 더 찬란하게 빛나게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