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 길에 잠시 멈춰본다

by 민유

나는 문구류 중에 연필을 가장 좋아한다. 무언가 쓸 때 펜으로 쓰기도 하지만 연필로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연필 쓸 때 소리와 그 느낌이 참 좋다. 여행을 갈 때 팬시점이나 기념품 가게에 가도 꼭 연필 한 자루는 꼭 사오는 거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얼떨결에 연필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연필로 쓰면 처음에 잘 맞지 않는 심이 점점 쓰다가 종이에 갈리면서 나와 딱 맞는 필기감으로 바뀌게 된다. 제대로 맞아든 연필과 내 손이 어울리게 되면 내가 가장 마음에는 글씨가 나온다. 그럴 때는 술술 글이 잘 써진다. 머리가 아닌 손으로 마음을 대신 해 글을 쓰게 된다.


연필이 닳아 깎는 동안 한 호흡 쉬게 되고, 다시 이어 쓰기를 반복하다보면 연필로 쓴다는 것을 통해 일을 하고 쉬는 것을 배우게 되는 거 같다. 일할 때는 하고, 쉴 때는 쉬어가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무작정 앞서 가지 말고, 무작정 쓰려고만 하지 말고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 넌 쉴 때야. 잠깐 멈추고 멀리서 지금의 나를 지켜봐라. 그럼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연필 깎으면서 생각하고, 또 쉬어본다.


삼나무 길이 펼쳐진 사려니 숲길 가는 길에 잠시 정차해서 한참을 길 끝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 이 길을 갔을 때 드라이브 코스로 좋은 곳이구나 생각 했었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길이 참 예쁘구나. 그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까.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가지 않은 길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그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못 보던 풍경을 보게 되었고,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고, 나 스스로 위로를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었다. 지금 가는 길은, 충분히 잘 가고 있는 길일 것이다. 내가 만들어 가는 길이기에, 지금처럼 잠시 정차하여 삼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내가 만들어가는 길 중에 하나일 것이다.


목적지는 있었으나 잠시 다른 길을 헤매는 것도 나의 길이며 나의 여행이 될 수 있다. 장소를 정하고 시간을 정해 그 틀에 맞춰 가는 계획적인 삶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가끔 나를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제시할 때가 있는 거 같다. 길이 다를 뿐 내가 생각한 그곳으로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더 많은, 다른 풍경을 보고 경험 했느냐가 달라질 것이다. 법정 스님의 말에 따르면 시간 자체는 항상 존재한다고 한다.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을 뿐,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이 오고 가고 변해 가는 것이라 했다. 시간이 있다, 없다는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그저 지금의 나를 보는 과정을 즐겨간다면 사는 동안 그렇게 의미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잠시 멈춰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가져본다. 마음이 불안한데 어떻게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싶어도 여유 있는 척 해보자. 뭐든 있는 척 하다보면 정말 그렇게 되기도 하니까. 이제야 내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높이 솟은 삼나무를 바라보며 숨을 크게 쉬어본다. 내 숨이 바람에 날려 깊은 속을 조금 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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