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리에 가면 항상 같은 자리에 멈춰 바라보는 집이 있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창고 같지만 풀이 무성한 한 자리에 있는 그 집을 보면 여러 집들이 떠오른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내가 살고 싶은 집, 그리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집.
최근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내가 옛날에 죽은 집’을 보면 마지막에 ‘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 있다.
누구에게나 옛날에 자신이 죽은 집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곳에 그저 죽어 있는 자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할 뿐.
내가 생각하는 집은 어떤 곳일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그저 쉬는 곳, 마음이 편안한 곳, 일이 끝나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내가 생각하는 집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집은 생각처럼 편안하지도 쉬지도 못할 때가 많다. 아직 나에게 마음 편안 집을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내가 살고 있는 집, 전에 살던 집, 잠시 머물렀던 집, 나에게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들을 다시 떠올리며 ‘집’은 어떠한 존재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 답을 찾아가려고 했다.
나는 살면서 이사를 많이 해본 적이 없다. 한 번 살게 된 집은 오랫동안 살게 되었다. 내 기억에 제일 처음 집은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식당에 방이 두 칸 이어진 집이다. 그리고 이사 간 집은 바로 앞집인데 식당이 잘 돼서 조금 큰 곳으로 이사 갔다. 그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살았고, 어린 시절 대부분 그 동네, 그 집에서 보냈다. 잠시 이도동으로 이사 갔지만 2년 뒤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이사와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지금 집으로 이사 온 뒤로 난 예전에 살던 집 근처는 물론 그 동네를 잘 가지 않았다. 나에게 추억이 있고 좋은 기억들이 있지만 반면에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학교 기숙사 생활 하면서 집의 그리움을 느끼게 했고, 부모님께서 별거를 하게 되고, 돌아가신 아빠와 자주 다투며, 아빠와 함께 마지막 머문 곳이기도 했다. 그 집을 나오고 나서 한 동안 꿈에 예전에 살던 집이 나왔는데 요즘도 종종 그 집 꿈을 꾼다. 예전에는 힘든 기억 때문에 좋지 않은 꿈들을 꾸었다면 지금은 아마 내가 그 집, 그 동네를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에서 꿈을 꾸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에 오랜만에 우리 집 동네를 다시 가게 되었다. 그새 변한 곳도 있고, 그대로인 곳도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에는 내가 살던 화북을 지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다면 이제는 추억의 동네가 되어 다시 새롭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다시 그 동네를 찾아가보고 싶었다. 화북포구를 가기 위해 일부러 골목골목을 누비며 어떻게 변했는지 어린 나는 여기서 무얼 했었는지 잊었던 기억들이 서서히 떠올랐다. 친구들과 놀다 길을 잃어버린 나, 만화책을 빌리는 나, 핫도그를 사 먹는 나까지 눈앞에 그려졌다. 사라봉에서 바라보던 내가 살던 동네를 멀리서만 바라보았는데 이제 가까이, 그 안에서 거닐다보니 마지막에 남은 슬픈 추억에서 더 멀리 행복했던 추억으로 돌아갔다.
다시 책에서의 문장을 떠올려 나에게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옛날에 죽은 집의 나와 지금 다시 마주할 자신이 있는가? 이미 마주하여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