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정류장

by 민유

어린 아이가 첫 이별을 경험할 때 그 충격은 말도 못한다. ‘이별’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기 어렵기에 그 경험은 지금까지의 슬픔 중 하나 일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별’인 거 같다. 누군가와 헤어지게 될 때면 마음이 공허하고 그 사람과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슬픔을 채워가는 거 같다. 최근 난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이별을 겪어야 했다. 나를 담당하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병원을 그만두었다. 그 동안 여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봤지만 그 중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시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 해주셨다. 물론 의사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듣는 자세와 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내 말을 허투루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 덕분에 금세 좋아지고 병원 가는 날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기다리게 만들어주셨다. 선생님이 병원에 안 계셔서 놀랐지만 다행히 내 몸과 정신이 나아지고 있어 마음을 다잡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지만 나에게 인생 상담을 해주시는 멘토 같은 분이셨다. 결코 내가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일깨워 주신 분이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제까지 여러 운동들을 해봤지만 금방 지루해 하는 나의 성격에 모두 쉽게 그만 두었다. 그 중 ‘요가’를 한 번 배워볼까 싶어 헬스장을 등록하면서 요가 수업을 신청했다. 그 전에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금씩 하던 명상에 효과가 있어 요가는 나에게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 요가 수업을 할 때는 흥미를 느끼기도 전에 따라 하느라 정신없이 수업을 받았다. 선생님이 할 때는 쉽고 간단해 보이는 동작들이 왜 이리 어려운지 내 몸을 내가 컨트롤 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요가 수업이 점점 힘겹게 느껴졌지만 수업을 하는 동안 엄살을 부릴 수도 없고, 주저앉을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선생님께서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고,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이 힘든 동작을 설명하면서 하고 계시기에 어떻게 해서든 따라 가려고 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넘기니 요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매트를 깔아 놓고 요가 책도 읽어보면서 몸과 마음의 수련을 즐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요가를 할 때 멋있어서 나도 저렇게 멋있게 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며 요가의 신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걸어가고 있다. 이런 재미를 알게 해 준 선생님도 마지막 수업을 알리며 익숙하지 않은 헤어짐을 또 경험해야만 했다.


갑작스럽게 연이은 사람들과의 이별에 나는 애써 담담한 척 하고 있지만 이별은 여전히 어렵다. 새로운 선생님이 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직업이 같을 뿐 같은 사람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신하기는 어렵다. 그 동안 쌓은 신뢰와 정이 있고, 마음을 나누었기에 그 시간과 추억까지 대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기 시작한 적이 있다. 돌아오는 상처와 이별의 아픔을 견뎌내기 힘들어 오래 만나지 않을 사람들이라 생각이 들면 적당한 선을 그어 그 선을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 어차피 다시 안 볼지 모르는데 시시콜콜 내 이야기를 하며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나에 대한 오해를 하곤 하지만 그 오해 또한 내가 만든 것이기에 누굴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일단 내가 상처를 받지 않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평대리에서 비자림 가는 방향으로 가다 우연히 오래된 버스정류장을 발견했다. 지붕은 낡아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지 못할 거 같은 그 버스정류장을 보며 버스에서의 이별을 기억한다. 중학생 시절에 엄마가 일본으로 일을 하러 가야 되는 적이 있었다.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날들이라 엄마와의 이별이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엄마가 떠나야 하는 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려고 하는데 엄마도 목욕탕을 갔다 가야겠다고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겠다며 함께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 안에서 엄마와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내려 창문으로 엄마를 마지막으로 보고 학교로 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다는 걸 보고 그제야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엄마와 버스를 함께 타본 적이 없었다는 것과 엄마는 한 번도 버스를 타고 어딜 가본 적이 없으셨다. 그 날 엄마는 왜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게 정말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이별 정류장.jpg


사실 알고 보면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벨을 누르듯이 이별에도 미리 신호가 온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난 선생님께서 오래 계시지 않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의 말과 눈에서 행동에서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었다. 이렇게 빨리 이별을 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건 예상을 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요가 선생님도 일주일 전에 그만두는 걸 얘기 해주셔서 내 나름대로 마지막 수업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빈자리는 그 사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비어있고, 내 스스로 그 공간을 채워나가야 한다. 나의 사람들이 하나, 둘, 정류장에 내리지만 버스는 다시 오고, 새로운 사람이 타고, 시간이 흘러 내렸던 사람이 또 타게 될 것이다.


영원히 이별했다 단정 짓지 말자. 어쨌든 그 사람의 앉았던 자리는 그대로 머물러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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