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하 커플이라 왜 말을 못 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습니다만,

by 서현

“오빠는 주변 사람들이 우리 어떻게 만났는지 안 물어봐?”

“물어보면 그냥 여행에서 만났다고 하지.”

“여행에서 어떻게 만나냐고 안 물어?”

“그냥 카페에서 만났다 하면 그런 줄 알지!”


2013년 12월, 임용고시 1차를 마친 나는 친구 둘과 제주도로 왔다. 배짱도 좋다! 최종 합격은커녕 1차 합격자 발표가 나온 것도 아닌데, 설마 떨어지겠나 싶어 일단 저지르고 본 여행이었다.


첫 번째 숙소는 애월 한담 해변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봄날>. 그 당시 지드래곤이 예능을 찍은 장소라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곳. 입구에 귀여운 웰시코기들이 반겨주고 앞쪽엔 바다가 보이는 자그마한 카페가, 뒤쪽엔 남녀 분리된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방 안에는 2층 침대만 빼곡하게 차 있었고 샤워실도 열악했으나, 아무렴 뭐 어때. 임용 공부를 떠나 온 제주도 여행은 뭘 해도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봄날>에 도착한 첫 날밤. 만원만 내면 저녁 8시부터 무제한 맥주와 안주를 제공한다는 맥주파티에 나와 친구들은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나와 신랑은(구. 남친) 거기서 그렇게(?) 만났다.


주변 사람들이 신랑을 어떻게 만났냐 물으면, “제주도 여행 가서 만났어요.” 한다. 결혼 후에도 결혼 전 연애할 적에도. 여기서 열에 열명 모두가 다시 묻는다.

“여행 가서 어떻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그 순간이 나는 꽤나 흥미롭다.

“게스트하우스요. 게하 커플이에요.”

보통 디테일하게 ‘맥주파티’까지 언급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덧붙여 싱글인 지인들이 "남친은 어디 가서 만나나" 하면, "여행가! 게스트하우스 고고!"를 외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신랑은 가만 보면 애초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고 하는 걸 못 봤다. 최근에서야 왜냐고 물어보니 (언제나처럼 무덤덤하게) 딱히 이유는 없단다.

'여자 꼬시러 간 것처럼 보일까 봐는 아니고?ㅎㅎㅎ'


맥주파티 다음날, 카페에서 조식 먹던 아침. 난 오션뷰를 찍었던 것뿐인데 남편(사진 오른쪽)이 내 프레임에 들어왔다. 절대 반해서 도촬 한 거 아님!


하긴, 요즘은 나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다고 하기가 괜히 좀 그렇다.

게하 가서 인연 만들라고 너스레 떨던 것도 이제는 절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렸으면 말렸지...

이유는 딱 하나. 최근 요 몇 년간 게스트하우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 2013년만 해도 게스트하우스가 한창 생겨나는 초창기였기에 위험성보다는 새로움, 저렴한 비용의 숙식 해결 등의 매력이 더 부각됐었다. 그렇지만 그 때라고 위험성이 없었겠는가. 생각하지 못했을 뿐, 누군가 충분히 나쁜 마음을 먹으면 위험할 수 있었다. 어딜 가나 낯선 사람들을 만난 함께한다는 건 흥미로우면서도 위험한, 양가적인 모험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만난 <봄날>은 진즉 게스트하우스는 중단하고 카페만 운영 중이다.

커플이 된 이후 매년 제주 여행 중 필수코스처럼 들르던 추억의 장소.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한담 해변의 파도 소리만이 청량하게 들리던 한적한 그곳이 화려한 카페와 들끓는 관광객으로 잠식된 모습이 조금은 서글퍼서.


훗날 2세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가 만난 곳이야!" 짠- 하고 데려가고 싶은데,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언제나처럼 무덤덤하게) 남편이 말한다. "그냥 여행에서 만났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