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Business to Business) 서비스가 B2C(Business to Customer) 서비스와 가장 크게 구분되는 지점은, 구매 결정권자와 실사용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 때 끝내주는 UX(사용자 경험)를 제공하여 성공한 사례들을 보며 UX가 곧 서비스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몇 년간 B2B시장을 경험하며 구매 결정권자들의 분명한 니즈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실사용자인 임직원들에게 멋진 UX를 제공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말로 직원들이 백날 좋다고 말해도, 대표가 놉 하면 도입할 수 없다는 것.
물론 구매 결정권자들의 니즈도 사용자 경험이라면 경험이겠지만, 그들의 주요한 니즈는 회사가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치명적인 상황을 이 서비스는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냐는 것들이었다. 왜 때문에 내가 겪는 구매 결정권자의 니즈는 유독 사용자 경험을 저해하는 상황을 야기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히 규모가 있는 기업일수록 이 양상은 더 뚜렷한 것 같았다.)
어쨌든 이를 잘 알고 있을 지라도, 이런 이유로 UX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닥치면 실무자들은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메이커의 슬픔을 아는가ㅠㅠ 쉽게 납득되지 않는 데다 심지어 그것이 공수도 많이 들고 짜치는(?) 일이라면 좀처럼 동기 부여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메이커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일을 바라보고 임하느냐가 중요하다.
최근 참여 중인 프로젝트에서 굉장히 challenging한 과제가 생겼고, (물론 이 역시 구매 결정권자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에서 발생한 과제) 그로 인해 일정 연기뿐만 아니라 자칫, 아니 대놓고 사용자 경험을 해쳐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주요한 feature인가? 꽤나 애정을 갖고 열심히 만들어오고 있어 더욱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 팀 리더들은 이 결정사항에 대해 실무진들에게 그대로 지시하지 않았다. 본인들을 포함하여 실무진들이 납득될 때까지 질문하고 다른 대안은 없을지 모색하기 위해 한 달간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나온 결정사항을 실무진들에게 전달할 때에도, '지시사항이니까 따르세요~'가 아닌, 실무진들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한 trade-off을 계속해서 검토하며 최적의 안에 대해 모두의 컨센서스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특히 감동받았던 부분은, 인트라넷에서 대표를 멘션하여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feature를 제공했을 때 확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의견을 요청하며 지시가 아닌 설득을 유도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샌가 문득 이 말도 안 되는 과제를 해냈을 때, 어쩌면 전례 없는 강력한 프로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메이커들이 어떤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일해야 하는지 잘 이끌어주는 리더들이 고마웠고, 나중에 나도 이런 리더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니 복 받았다 진심ㅋ
두서없이 썼지만 lesson learned은, 서비스의 UX도 중요하지만 업계 특성상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선 함께 일하는 멤버들끼리 컨센서스를 맞추고 설득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 너무너무 바쁘지만 배울 게 많아서 행복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