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모를 막막함을 느끼던 2021년 초여름 천호의 상담실에서 상담 선생님은 내가 뽑은 키워드를 가만히 보시다가 ‘도경 씨에게는 ‘성장’과 ‘성취감’이 가장 필요한 키워드 같아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눴던 대화가 또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한마디로 나는
그간 헤매던 고민과 걱정이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뭔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는 다시 막막할까?
막막함은 익숙하다. 20대 때는 ‘열등감’과 함께 찾아와 나를 안으로 집어넣어서 남들은 졸업 학점을 다 이수하고 취업 준비할 시기에 계절 학기를 듣게 했다.
일을 잘 해내고 싶었던 첫 책임 매니저 때는 ‘자책’으로 나를 괴롭혀서 인생 처음 가위에 눌리기도, 뮤직비디오 여주인공처럼 버스 안에서 울게 만들었다. 내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는 항상 비슷한 막막함을 느꼈다.
요즘 찾아온 막막함에는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곁들어져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전처럼 엉망진창 일상이 무너지거나 정신과 몸 건강이 안 좋은 건 아니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난다.
다만 좀 더 현실적인 고민과 걱정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명확하게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몰라서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나 이도경. 복잡하게 고민하는 건 체질에 맞지 않다.
고민에 쓸 에너지가 있지도 않고, 나름 오래 고민했다. 지금은 이 감정을 보내주고 싶다. 그러니 반대로 하루하루 명확하게 살았을 땐 뭘 했을까 되짚어 본다.
살을 빼보려 할 때는 모든 끼니를 조심해서 먹지 않지만, 그래도 한 끼 정도는 감량을 위한 메뉴를 먹을 때, 이상하게 부끄럽던 헬스장 입장을 이겨내고 정해진 수업을 꼬박꼬박 나갈 때 조금씩 변하는 나를 느꼈었다. 마음 정진을 배울 때는 코로나 걸린 몸으로도 5시에 일어나서 108배를 할 때 스스로가 대견하고 내가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글을 정리하며 조금 가닥이 잡힌다. 나의 막막함은 ‘지금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음’에서 온다.
원하는 걸 하지 않는다니 좀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종종 있지도 않은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
현실적으로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하려니 막막했다.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없고, 퍼센티지를 조절하면 되는데 말이다.
두 가지를 섞어서 목표를 잡아봐도 좋고, 우선순위를 정해도 된다.
어차피 둘 다 내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없다. 변화는 요술봉으로 만들어내는 유리구두가 아니란 걸 이제는 안다.
나의 판단을 믿고, 조금씩 움직이며 작은 성취를 쌓자.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이 막막함도 지나간 감정이 되어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놓치지 않고 가고 싶은 건, 내가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이 막막함은 또다시 찾아올 거란 사실이다.
고민을 부정적이게 받아들이면 괴롭지만,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변화의 시작이 됐었다. 늘 지금의 내가 모를 뿐.
다만, 할 것을 마음에 되새기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