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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May 12. 2022

카메라와 포토샵

격월간 『현대문예』 통권 121호 발표작

이 글은 격월간 『현대문예』 2022년 3ㆍ4월호(통권 121호)의 172-177쪽에 실린 글임을 밝혀 둡니다.


사진 촬영, 특히 풍경사진 촬영에는 어릴 때부터 흥미가 많았다.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가거나 어디 멀리 갈 일이 생기면 집에 있던 보급형 자동카메라로 이런저런 풍경을 찍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진반 활동을 한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 갔던 성산 일출봉에서는 빗방울 돋는 제주 성산 앞바다의 회색빛 바다에 떠 가는 배의 모습을 보고는 아주 대단한 예술작품을 만들 요량으로 여러 차례 셔터를 눌렀던 기억도 난다. 물론 성산 일출봉에서 바라본 가슴 벅찬 장관은 사진으로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멋진 사진을 찍겠다는 열망과는 달리 사진 촬영 기법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집에 있던 카메라로는 내가 원했던 작품사진을 촬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멋진 작품사진을 보고 감동하는 일이야 그 뒤에도 이어졌지만, 사진 촬영에 대한 열정은 무엇 때문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강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여행 가서, 아니면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사진 찍는 일이야 좋아했지만  그저 일상이나 여행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일 뿐이었다. 다른 관심사나 일거리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큰맘 먹고 찍은 사진들이 내 의도와 달리 작품이라고 할 만한 사진이 못 되었던 데다 값비싼 SLR 같은 카메라를 장만하기도 부담스러웠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작품 사진 촬영에 대한 열망은 2-3년쯤 전부터 갑자기 들불처럼 되살아났다. 특히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를 다닐 때면 웅장하고 멋들어진 경관을 그저 답사 ‘인증샷’의 배경으로만 남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리교사 단체의 사진전에 작정하고 출품한 호주 12 사도와 헝가리 부다 왕궁의 멋진 사진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탓에 화질이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여러 모로 아쉽기 그지없었다. 제대로 된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유달리 카메라를 든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기기 시작했고, 카메라 좀 만진다는 지인들마다 연락을 해서 카메라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한 번은 어느 교수님의 퇴임식에 참석한 후배 대학원생이 하얀색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퇴임식 사진을 찍기에, 뒤풀이 자리에서 그 대학원생과 카메라 이야기만 주야장천 했던 기억도 난다.

  사진에 대한 열망을 참지 못한 채 결국 미러리스 카메라를 한 대 장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카메라와 렌즈 종류를 알아보니 이것도 종류가 굉장히 많다. ‘똑딱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는 보급형 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와 달리 렌즈 교환식 카메라는 렌즈까지 계산에 넣어야 해서 기종을 결정하기가 더 까다로웠다. 고급 풀프레임 카메라는 렌즈까지 합쳐서 수백만 원에서 비싸게는 천만 원을 호가하는 기종도 있었다. 아마추어라고도 볼 수 없고 그저 사진 촬영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 뿐인 내게 그런 카메라는 너무 부담스러운 호사였다. 이리저리 정보를 알아본 다음 재고 따진 뒤에 결국 인터넷상에서 평이 좋은 크롭 바디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초점거리 18-135mm짜리 렌즈도 함께. 풀프레임 카메라를 장만할까 크롭 바디로 만족할까 한참이나 고민했지만, 크롭 바디 카메라의 성능도 무시할 수준이 아닌 데다 내 사진 내공이 말 그대로 걸음마 수준이라 값비싼 카메라 장만해 봐야 제값을 하지도 못하리라는 판단 아래 결국 사진 생활의 시작은 크롭 바디 카메라로 시작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는 신이 나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카메라 사용이 생각보다 만만찮다. 행사에서 단체사진 촬영은 나름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그런 사진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자동카메라나 ‘똑딱이’ 카메라, 휴대폰 카메라와 달리 미러리스 카메라는 기능도 많고 조작하기도 꽤나 까다롭다. 한 번은 대구 앞산에 갈 일이 생겨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카메라를 당당히 들고 있으니 케이블카 직원에게 사진사냐는 질문까지 듣기는 했지만, 정작 촬영한 사진들은 죄다 초점이 엉성했다. 앞산 정상의 돌탑을 흐릿하게 처리한 소나무 배경으로 여러 장 찍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돌탑마저 초점을 잃은 채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다른 사진들도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좋은 카메라는 그걸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의 손에서야 좋은 사진을 찍어 주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초보자를 위한 사진 강좌를 들으면서 새 카메라에 비로소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기계가 해 주는 대로 따라만 하던 초점 잡기, 조리개 조절하기, 셔터 속도 맞추기, 필터 교환하기 등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장만하고 한 달도 더 지나서야 비로소 카메라를 제대로 쓸 수 있었던 셈이다. 어떻게 쓰는 줄 알고 나니 사진에 대한 욕심이 더 커져갔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은 뒤에 유명한 인터넷 사진 커뮤니티에 내가 찍은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 번은 해거름의 한강변 사진을 올렸더니, 누군가 ‘윤슬이 예쁘네요’라는 댓글을 단 기억도 난다. 해거름의 해는 빨갛게, 한강변의 건물은 검게, 한강물은 다소 어두우면서도 윤슬이 나오게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때는 나름 분위기 있게 찍었다고 자화자찬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보다도 사진 촬영에 더 미숙해서 그런 사진이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진에 좀 재미를 붙이고 난 뒤 강릉 안목 해변에 일출 사진을 찍으러 갔다. 날씨가 맑다는 일기예보를 한 뒤 그 전날 평소보다도 두어 시간 더 일찍 잠자리에 들고는 일출 시간에 늦지 않게 새벽같이 일어나 안목 해변으로 향했다. 문제는 바다 너머의 날씨였다. 육지에는 구름이 많지 않았지만 바다 너머로는 구름이 제법 짙게 드리웠고, 떠오르기 시작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구름에 가린 탓에 일출하면 떠오르는 선명한 붉은빛과는 거리가 먼 탁하면서도 푸르스름한 듯도 한 그런  아침해였다. 실망감이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지만 하늘이 그런 걸 내가 어찌하랴. 어쨌든 해가 보이기는 하니 아쉬운 대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사진 강좌와 인터넷에서 배우고 찾은 대로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조절하고 필터까지 바꿔가며 말이다.

  기대에 못 미친 날씨에 찍은 아침해 사진을 포토샵으로 불러왔다. 혹시라도 포토샵의 힘을 빌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그런데 포토샵으로 색조를 조절하니 눈앞에 새로운 정경이 펼쳐진다. 붉은 색조를 강조하니 구름에 기가 죽어 있던 아침해가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의미한 형체를 드러내며 붉은 듯 푸른듯한 기운을 쥐어짜 내는듯하던 아침해는, 포토샵의 힘을 빌어 구름을 뚫고 진홍빛 자태를 드러내더니 구름 아래로 출렁대는 동해바다마저 붉게 물들인다. 19세기의 인상파 화가들은 빛에 초점을 맞추어 풍경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데, 포토샵으로 사진을 편집해 보니 빛이 이렇게 달라지면서 사진마저도 바꿀 수 있구나 하는 발견의 환희까지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일천한 내 사진 실력과 인상파 화가들의 위대한 예술혼을 감히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포토샵에 맛 들이니 사진 찍는 재미가 절로 붙는다. 빛이 달라지니 사진도 달라지면서 어릴 적부터 꿈에 그리던 멋진 풍경사진에 조금은 더 가까운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 물론 ‘뽀샵질’이라는 속어도 있기는 하지만, 사진예술이라는 것도 결국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다. 사진가 치고 사진 편집을 하지 않는 이를 찾기는 어려울 테고, 미술가들이 하는 일 역시 현실을 자기 예술 철학에 맞게 아름답게 재구성하는 일일 테니까.

  포토샵에 맛을 들이고부터는 노을 진 하늘을 더 붉게 물들이고, 파란 하늘을 말 그대로 파아랗게 표현한 사진을 찍고 만들어 내는데 아주 재미를 붙였다. 아직 어디 가서 사진에 조예가 있다고 하기는 한참이나 멀었지만, 카메라의 조리개와 색온도, 셔터스피드 등을 조절하며 풍경에 빛을 더하고 포토샵으로 빛을 조절하니 마치. 내가 색색의 물감을 다양하게 배합하고 덧칠해서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화가가 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성산. 일출봉의 장관을 자동카메라에 담고는 현상한 결과물에 실망하던 내가, 큰맘 먹고 산 미러리스 카메라와 포토샵 덕분에 이제는 풍경을 에술적인 감각이 조금은 묻어난 사진 찍기에 입문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한 번은 초가을에 김포 전류리 포구를 가득 덮은 해바라기 꽃을 가을 하늘과 담아서 파란색과 노란색을 살린 다음 좋아하는 인터넷 스타들의 팬카페에 올렸더니, 인터넷 스타 본인들부터 사진 잘 찍었다고 댓글을 달길래 꽤나 황송했던 기억도 난다.

  미러리스 카메라를 장만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 범유행이 시작되는 바람에 사진을 배울 기회도, 출사를 할 기회도 많이 갖지 못했다. 여전히 부족한 사진 실력이지만 적어도 예술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맛보기는 한 셈이다. 조금 있으면 단풍이 절정을 이룰 텐데 올 가을에는 단풍을 눈으로만 즐기지 말고 미러리스 카메라와 포토샵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울긋불긋한 단풍이 가져다줄 또 다른 색채의 향연도 즐겨볼까 싶은 욕심도 고개를 내민다.

  풍경사진을 즐겨 찍다 보니 아직도 사진 실력은 초보를 벗어나지 못했건만 두어  전부터 광각렌즈 하나 장만할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짬이  때마다 인터넷 포털에 ‘광각렌즈’, ‘망원렌즈등의 검색어를 입력해서 렌즈 종류와 가격을 알아봤더니, 하루는 카메라 렌즈 판매하는 곳에서 메일을 보내길래 인터넷 때문에  정보가 새는  아닌가 싶어 굉장히 당혹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카메라 렌즈 가격이 만만찮은 데다  쓸데가 원체 많기에 맘에 든다고 덥석 렌즈를 사기는 어렵지만, 이런 추세로 봐서는   뒤에는 나도 서로 다른 카메라 렌즈를 교환해 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도 살며시 든다. 언젠가는 사진전을 열고 싶은 욕심도 있는데,  꿈을 이루려면 다른  들어갈  씀씀이를 조금씩 줄여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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