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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Apr 06. 2022

유라시아의 스텝이 가져다준 축복, 말과 문명교류


  유라시아, 모르기는 해도 독자 여러분께는 절대 낯선 이름이 아니리라 믿는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쓰는 유라시아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기도 하다. 한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유라시아는 그 광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고대부터 문명 교류를 이어 왔다. 그 덕분에 유라시아는 외부와의 교류가 적었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남북 아메리카, 호주 등과는 달리 수준 높은 문명을 계속해서 발달시킬 수 있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중앙아시아에 넓게 펼쳐진 스텝과도 관계 깊다. 스텝은 척박한 땅이기는 하지만 유목 생활과 인간의 왕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유라시아의 인류는 스텝을 통해 문물과 문화, 기술의 교류를 이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중앙아시아의 스텝에는 야생마가 살고 있었다.  인류는 체구가 크고 힘이 세면서도 비교적 순한 야생마를 말로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무거운 짐을 끌고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주파할 수 있는 말은 개, 소, 양, 돼지 등 다른 가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이점을 인류에 제공해 주었다. 마차를 끌거나 승마를 할 수 있게끔 개량된 말 덕분에, 인류는 중앙아시아의 스텝을 통해 동서 문화 교류를 효율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말 덕분에 인류는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제국을 세울 수 있었고, 전쟁의 양상 또한 극적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변화는 바로 유라시아의 스텝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스텝이란 본래 유라시아, 그중에서도 흑해 연안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쳐 분포하는 초원지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기후 구분 체계를 고안한 러시아 태생의 독일 지리학자 쾨펜()은 유라시아의 초원지대 기후를 바탕으로 스텝 기후라는 기후 형태를 규정했다. 스텝 기후란 연평균 강수량 250-500mm에 해당하는 건조기후의 한 유형이다. 스텝은 연 강수량 250mm 미만인 사막보다는 강수량이 많기 때문에,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풀이 자라나 초원을 이룬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강수량으로는 나무가 자라거나 농사를 짓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다 보니 스텝에서는 농경 대신 유목 문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인구 부양력이 낮다 보니 큰 마을이나 도시도 발달할 수 없었던 스텝이었지만, 이곳에는 인류 문명사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을 야생동물이 살고 있었다. 바로 말이었다. 스텝의 풀을 뜯어먹고 살아가던 야생마는 소, 돼지 등과 같이 몸집이 크면서도 인간이 길들이는 데 무리가 없는 순종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말을 잡아 고기를 먹고 가죽과 뼈를 옷감이나 도구의 재료로 사용하던 유라시아 스텝의 원주민들은, 언제부터인가 말을 길들여 가축으로 삼기 시작했다. 기원전 5,000-4,500년 무렵에는, 유라시아 스텝의 서쪽 끝인 흑해와 카스피해, 캅카스산맥의 북쪽 일대에서 말의 가축화가 시작되었다.

말의 가축화가 시작된 지역(출처: 브리태니커)

  말은 다른 가축과는 차별화되는 특징을 가졌다. 번식력이 낮기는 했지만,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데다 지구력도 갖고 있었다. 힘이 세어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탄 수레까지도 끌 수 있었다. 예민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기는 하지만, 잘 길들이면 험한 상황에서도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며 달렸다. 큰 덩치를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먹이를 먹어대기는 했지만, 애초에 스텝의 풀을 뜯어먹고 사는 동물이었으니 먹잇감을 구하는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중앙아시아 서부의 스텝 지대에서 길들여지기 시작한 말은, 인간의 이주와 더불어 세계 각지로 퍼져 갔다. 지금으로부터 5천 년-3천 년 전에 말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국, 유럽, 인도 등 세계 각지로 퍼져 갔다. 유라시아는 광대한 땅이었지만 스텝을 통해 동서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3-4천 년 전에는 유라시아의 전역에서 말이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말은 초식동물인 데다 스텝이 아닌 환경에서도 잘 자랐기 때문에, 농경 문화권에서도 말을 받아들여 기르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말이 전파된 경로와 시기(Shev, 2016, 127)

  말이 전파되면서 유라시아의 문명은 획기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쟁의 형태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소나 돼지, 양과 달리 말은 훈련이 비교적 쉬우면서도 전투에 적합한 동물이었다. 질주하면 시속 4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데다, 주인의 조종에 따라 적진에 돌격하여 적을 짓밟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말을 길들이기 시작한 문명은 전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돌격하며 활을 쏘고 창을 던지는 전차 앞에서 보병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각국은 군사력 강화를 위해 전차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했고, 전차의 보유 대수는 국가의 군사력과 국력, 그리고 군주의 권위와 동의어로 쓰였다.

  말이 불러온 혁신은 군사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먼 거리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말 덕분에, 유라시아의 문명 교류는 더욱 촉진되었다. 스텝의 유목민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동서 교역을 주도했고, 그 덕에 유라시아의 문명 교류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게다가 말 덕분에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문명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군주의 명령을 영토 각지로 신속하게 전달하면서 이전보다 더 큰 땅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일례로 고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왕도(王道)라 불리는 도로망을 건설한 다음, 파발마를 보내어 각지를 통치하는 식으로 거대한 제국을 다스릴 수 있었다. 암행어사를 상징하는 마패 역시, 원래 용도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조정의 명령을 전달하거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는 데 쓰인 일종의 증명서였다.

  이처럼 말이 인류 문명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유용하다 보니, 인류는 말을 다양한 형태로 개량했다. 말의 몸집은 커졌고, 말등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데 적합한 형태로 변모해 갔다. 기원전 5세기경-기원 전후에 접어들어 전장에서 전차는 퇴출되었고, 기병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전차는 크고 강해 보이기는 하지만, 평지가 아니면 사용하기 힘든 데다 방향 전환도 어렵다. 반면 말등에 올라탄 기병은 평지가 아닌 지형에서도 활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하며 훨씬 유연하면서도 기동력 있는 전투를 할 수 있었다.

  말은 정치 체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국가의 통치, 특히 군사력 확보에 있어 우수한 말의 확보는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말을 기르기 위해서는 소나 양, 돼지와 같은 다른 대형 가축보다도 더 많은 노력과 자금이 소요된다. 번식력이 낮은 데다 워낙 먹이를 많이 먹고 예민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을 기르고 훈련시키려면 넓은 초지도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말을 키우려면 많은 자금과 말 사육에 필요한 넓은 땅이 필요하다. 말의 도입이 이루어진 이래 각국 정부는 우수한 말, 특히 군마의 사육과 품종 개량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야만 국가의 효율적인 통치와 부국강병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 주나라와 중세 서유럽의 봉건제 역시 말, 특히 군마의 확보와 밀접하게 관계된다. 주나라나 중세 서유럽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마를 확보하기 위해 지방의 유력자를 제후로 삼아 자치권을 부여하는 대신 정예 기병대나 전차부대를 그들의 힘으로 양성케 했다. 이처럼 말은 역사와 통치 체제를 바꿀 정도로 중요한 가축이자 전략 물자였다.


  말은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갔지만, 말을 다루는 데 가장 능숙했던 이들은 중앙아시아 스텝의 유목민이었다. 애초에 말의 고향인 만큼 말을 기르기도 쉬웠고, 가축을 기를 목초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주기적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유목민에게 말처럼 유용한 가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유목민의 아이들은 걸음마를 뗄 무렵이면 말타기를 배웠고, 유목민에게 말을 타고 말 위에서 활쏘기를 하고 창검을 휘두르며 사냥과 전투를 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이 때문에 유목민의 기병대는 농경 문명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워낙 기마술과 마상 전투에 익숙하다 보니, 농경 문명의 보병대는 물론 정예 기병대조차 유목민의 기병대를 상대하기 어려웠다. 아틸라 제국, 몽골 제국 등은 유목민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까지 강대해질 수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 준다.

  하지만 스텝의 유목민이 그저 전쟁에만 능했다고 보는 시각은 단견이다. 


  한편 유라시아와 지리적으로 단절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아메리카, 호주 등에는 오래도록 말이 전해지지 못했다. 이런 곳에는 애초에 야생마가 없었고, 유라시아로부터 말을 들여올 길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얼룩말은 생김새는 말과 흡사하지만 유전적으로는 생각 이상으로 거리가 있는 데다, 너무 사납기 때문에 길들일 수도 없다. 그리고 말을 길들였느냐 그러지 못했느냐의 차이는, 문명 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군사력은 물론, 교통이나 수송능력 등에서도 큰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16세기 초반 에스파냐의 콘키스타도르들의 아스테카, 잉카 정복은 말의 유무가 문명에 어떤 차이를 불러왔는가를 결정적으로 보여 준다. 아스테카와 잉카는 10만 명 이상의 대군을 거느리고 주변 부족들을 정복한 거대한 군사대국이었다. 하지만 수백 명에 불과한 콘키스타도르들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물론 여기에는 금속이나 화약의 유무,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의 차이 등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생전 말을 본 적도 없는 아스테카인들과 잉카인들은 말에 올라탄 콘키스타도르를 신으로 여겼고, 콘키스타도르의 기병 돌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미 기병을 오랫동안 상대해 온 유라시아의 군대는 장창, 활, 장애물 등을 활용하여 보병으로 기병을 상대할 전법을 개발해 두었지만, 말에 무지했던 잉카인들은 그러지 못했다. 

  말은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에까지 군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전차부대로 유명한 나치 독일군조차 물자의 수송은 군마에 의존하는 부분이 컸고, 소련군의 정예 기병대는 정찰과 패잔병 추격 임무를 담당하며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구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군사 부문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미국과 서유럽의 선진국에서조차 자동차가 말과 마차를 완전히 대체한 시기는 20세기 이후였고, 20세기 중반까지도 이들 선진국의 농부들은 말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비록 오늘날에는 기계화로 인해 인류 사회에서 말의 중요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지만, 인류 문명사를 살펴보면 말 덕분에 인류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고도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이처럼 인류 문명의 발달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가축인 말은, 중앙아시아에서 우크라이나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초원을 만들어 준 스텝 기후가 인류에 가져다준 선물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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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lock, C. A. 2009. Delayed Obsolescence: The horse in European and American Warfare from the Crimean war to the Second World War. Stillwater, OK: Oklahoma State University.

Shev, G. 2016. The introduction of the domesticated horse in Southwest Asia. Archaeology Ethnology and Anthropology of Eurasia44(1), 12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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