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지구문학》 2002년 봄호(통권 97호) 게재 수필
이 글은 2022년 발간된 계간 《지구문학》 2002년 봄호(통권 97호)의 162-164쪽에 실린 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1월에 일어난 일이었다. 포병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한 지 2~3개월쯤 지났던 그 무렵 나는 보병연대의 전술훈련에 화력지원장교로 참여했다. 육군 전술에서 포병은 보병의 작전계획 및 기동에 따라 화력지원을 한다. 내가 속한 포병대대에서는 보병연대 예하의 세 개 보병대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나를 포함한 세 명의 화력지원장교를 파견했었다.
며칠간 이어진 전술훈련이 끝난 뒤 보병연대 연대장님의 주관하에 훈련 자체평가 회의가 열렸다. 연대 예하 부대의 지휘관과 참모들이 짤막하게 훈련 소감 발표를 했다. 포병 화력지원장교의 발표 시간이 돌아왔다. 세 명의 화력지원장교 중에서 제일 막내였던 내가 발표했다. “이번 훈련의 소감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발표하겠습니다……. 첫째…….” 첫째가 끝나갈 무렵 족히 6~7분이 지났다. 내 딴에는 나름대로 전술훈련의 군사적 의미를 세세하게 분석해서 멋지게 발표하겠답시고 부린 욕심이 선을 넘어 버린 셈이었다. 내가 파견된 대대의 참모들은 얼굴이 완전히 새하얘진 채 손짓으로 나를 말리고, 연대본부 참모들과 다른 대대의 대대장, 참모들은 저 포병 장교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하는 심산인지 다들 눈이 동그래져 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두 포병 장교의 표정도 심히 부정적이다. 어쩌다 보니 군대에서 일개 중위가 연대장 앞에서 큰 실례를 저지르게 생긴 셈이었다.
사람들 표정을 보니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만둘까도 싶었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여기서 사과하고 그만둔다면 여러 사람 앞에서 큰 망신만 당할 것 같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데까지 가 보자 하는 심산에 나머지 두 범주에 대해서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발표가 모두 끝나니 무려 15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일개 포병 중위 한 사람이 소감 발표를 한 시간이 다른 지휘관, 참모들이 발표한 시간을 모두 합한 시간보다도 더 길었다. 날벼락 제대로 맞겠구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좌중을 둘러보니 소감 발표장에 앉아 있던 지휘관, 참모들은 다들 어안이 나간 표정으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고, 연대장님도 할 말이 없다는 듯 몇 초간 나를 바라보더니 ‘그래, 듣고 보니 자네 말이 맞는 듯하네’라는 한 마디로 훈련 소감 발표회의 마무리를 지으셨다. 포병대대로 복귀하며 동석했던 선배 장교들에게 잔소리를 좀 듣기는 했지만, 어지간한 무례나 실수 정도에 그치지 않고 군대에서 일어나리라고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초대형 사고(?)를 터트렸던 덕분인지 나는 보병연대를 아무 탈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튿날 식사를 하러 간부식당에 갔다.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영관급 장교 두어 분이 나오길래 경례를 했다. 그분들이 날 보더니, 경례를 받아주는 대신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한다. “저 친구 어제 그 화력지원장교 아니냐?” “그 친구 맞네. 척 봐도 그 얼굴이야. 어제 그 일을 어찌 잊겠나?” 그러더니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치며 한 마디씩 건네신다. “야, 화력지원장교, 어제 대단하던데. 군 생활 20년 넘게 하면서 자네 같은 친구 처음 본다. 대단해.” “이 친구 내가 봤을 때 아는 것만큼은 참 많아. 자네 덕분에 아주 기억에 남는 훈련 할 수 있었네.” 순간적으로 머쓱해져 몸이 바싹 굳어지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어제 저지른 초대형 사고 덕분에 큰 훈련 때마다 화력지원장교로 파견 가야 할 보병연대에서 단단히 찍히지 않았나 하고 내심 크게 걱정하던 터였는데, 식당 앞에서 마주친 대대장들의 반응을 보니 부정적으로 찍혔다기보다는 뭔가 재미있는 사람 정도로 인식된 듯했으니.
며칠이 지나서였다. 퇴근길에 무거운 물건을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차 소리가 들린다. 그저 지나가는 차가 아니라 날 부르는 듯하여 돌아보니 연대장 지휘 차량이다. 순간 놀라서 경례를 붙이고 나서 보니 며칠 전 세 가지 범주를 주제(?)로 한 장장 15분간의 일장 연설로 넋을 놓게 해 드렸던 그 보병연대장님이다. 그 일이 떠올라 살짝 민망한 마음으로 멀뚱히 서 있는데, 연대장님이 한 말씀 하신다. “이 중위, 무거운 것 힘들게 들고 가지 말고 내 차를 타게.” 연대장님은 심지어 운전병에게 내가 짐을 지휘 차량 뒷좌석에 싣는 일을 도와주도록 해 주기까지 하셨다. 군 생활을 해본, 아니 군대 문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그 연대장님의 행동이 일개 중위에 대한 얼마나 큰 관심과 배려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큰 예우를 받았는가를 어렵잖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다음부터 나는 보병연대의 대 스타가 되어 버렸다. 보병연대에 화력지원을 하러 갈 때마다 연대 참모들은 나더러 ‘이번에 맡을 화력지원 임무의 개요를 세 가지 범주로 설명해 보게’라며 농을 건넨다. 심지어 날 이름이나 직책, 계급 대신 ‘범주’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지휘관이나 참모도 있을 정도였다. 그냥 작은 실수나 무례 정도였다면 망신 좀 당하고 끝냈을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대형 사고(?)를 친 덕에 ‘개념 없는’ 장교로 찍히는 대신 보병연대의 스타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그때 내가 화력지원을 담당하셨던 대대장님은 내가 소감 발표회에서 15분간 이야기했던 ‘세 가지 범주’를 대기업의 브랜드처럼 잘 살려 보라는 조언을 건네셨다. 장성까지 진급한 뒤 얼마 전 명예롭게 군 생활을 마감하신 그 대대장님과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
군 복무 중에는 오직 전역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지만, 돌이켜 보니 나름대로 나만의 브랜드까지 창출(?)했던 뜻깊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군 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신 다음 한동안 사회봉사단체를 이끌며 언론 지면에도 보도되었던 보병 연대장님을 비롯한 그때의 인연들이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기를 고대해 본다. 무엇보다 쭈뼛대며 어물어물 작은 실례를 저지르는 대신 아주 대놓고 15분간 일장 연설을 하며 명성(?)까지 날렸던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서, 용기와 대범함이라는 단어가 갖는 참뜻의 의미도 되새겨 본다.